지난 주 부장으로 승진한 회사원 박모(47)씨는 며칠 전 감사편지 한 통을 받았다. "A사에서 박○○ 부장님의 영전을 축하드리며 저희에게 10만원을 기부해주셨습니다. 소외된 분들에게 사랑을 실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부를 한 적이 없는 박씨는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박씨가 다니는 회사와 협력관계에 있는 대형 건설사 A사가 승진 축하 난초를 보내는 대신 서울 종로구의 한 사회복지기관에 박씨 명의로 기부금을 10만원 냈던 것. A사 관계자는 "화환이나 난초는 받고 나면 그만이고 버리는 일이 많지만, 기쁜 날 남을 도우면 기쁨이 두 배가 되고 의미도 있어 지난해부터 기부권을 선물하고 있다"고 말했다. A사가 1년간 직원 결혼 및 협력업체 승진 축하 등으로 기부한 돈만 5,000여만원에 이른다.
결혼 생일 승진 등 경사를 축하하는 문화가 바뀌고 있다. 한 번 받으면 처리하기가 쉽지 않은 화환이나 난초 대신 쌀을 보내는 문화가 몇 년 전부터 조금씩 퍼지더니 이제는 기부 활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
2주 전 결혼식 때 회사로부터 화환 대신 기부권을 선물 받은 박재순(30)씨는 "한 시간 쓰고 버리는 화환은 돈과 꽃 둘 다 낭비라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기부권을 줘 기독교재단에 기부했다"며 "연말정산도 받을 수 있어 1석2조"라고 말했다.
개인들 사이에도 축하 문화가 다양해지고 있다. 서울 잠원초교 박연수(60) 교장은 시어머니의 상수(上壽ㆍ100세)를 맞아 캄보디아 뱅몽지역에 시어머니 이름으로 우물 5개를 선물했다. 당초 계획했던 가족여행 대신 빈곤에 허덕이는 캄보디아에 우물 파는 비용을 지원하고 우물마다 가족 이름을 붙였다.
주부 장지영(36)씨는 아들이 태어난 날부터 하루 1,000원씩 모아 돌에 한 국제구호단체에 36만5,000원을 기부했다. 이외에도 만난 지 100일을 기념해 기부금을 낸 연인들, 제자 생일 때마다 제자 이름으로 기부금을 내는 선생님도 있다.
쌀 기부의 형식도 달라지고 있다. 결혼식이나 회사 창립식 때 축의금이나 화환 대신 쌀을 받아 복지기관에 기부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 심지어 경조사에 쌀을 보내주는 대행업체까지 등장했다. 2007년 개업 당시 경조사에 보낸 쌀이 1만1,000㎏였던 이 업체의 실적은 지난해 17만7,000㎏으로 17배 늘었다. 이 쌀의 대부분은 복지기관에 기부된다고 한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들 의식이 성숙해지고 기부문화가 확산되면서 당사자만 축하해 주는 것을 넘어 다같이 보람을 느끼는 쪽으로 축하의 방식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가 거북한 이들도 있다. 인사철이나 유명인의 경조사 때 대목을 보는 화훼업계가 대표적이다. 사단법인 한국화훼협회 이승용 국장은 "아직 화환 소비가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화환실명제 등을 통해 화환 재사용을 미연에 방지하고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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