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9일이었어요.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걷던 50대 직장인 한 분이 오시더니 '내일 무대에서 자유발언을 하게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약속대로 다음날 오셔서 '회사가 몇 년 새 어려워졌는데 대학교 다니는 자식 뒷바라지가 너무 힘들다'며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며 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된 촛불 집회에 거의 전부 참석한 김영식(28)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문화국장.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무대를 설치하고, 집회가 끝나면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서 뒷정리를 하던 그가 본 지난 한 달간의 집회는 "시민들이 자기 삶의 고충을 털어놓는 장"이었다.
촛불 집회의 시작은 미약했다. 지난달 29일 대학생 300여명이 광화문광장에서 등록금 인하 요구 기습 시위를 벌이며 집회의 막이 올랐다. 하지만 첫날 73명의 대학생이 연행되고 지난 4일 다시 20명이 연행될 때까지만 해도 "일부 과격한 대학생들이 늘 해오던 등록금 투쟁"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판이 커졌다.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초기에 집회를 하던 광화문 KT사옥 앞에서 넓은 청계광장으로 집회 장소를 옮긴 게 7일이었다. 10일에는 주최 측 추산 2만명의 대학생과 학부모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김씨는 "반값 등록금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한 상황에서 우리가 자리를 마련하자 국민들의 분노가 분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외연을 넓힌 집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고충을 토로하고 위로하는 공간이 됐다. "집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고교 2학년 학생은 자신의 가정 환경을 얘기하며 스스로 상처를 드러내기도 했고, 안양에 사는 한 70대 노부부는 매일 같이 한 시간씩 차를 타고 와서 구석에 앉아 조용히 학생들을 응원했습니다." 봉투에 도너츠를 담아 말 없이 건네고 갔던 도너츠 파는 아주머니, 경찰에게 "왜 죄 없는 학생들 잡아가려느냐"며 혼내던 아저씨 등 시위대 안팎에서 힘을 실어준 사람들을 다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김씨는 대학생들에게 더 할 말이 많았다. 그는 "대학생들이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다같이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며 "희망을 찾기 위해선 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값 등록금 집회의 압박에 한나라당은 23일 2014년까지 등록금 30% 인하하겠다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가가 방학을 맞으면서 참여자가 줄어들어 촛불 집회의 불길은 사실상 사그라졌다는 지적도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 집회처럼 경찰과의 격렬한 충돌은 없었지만 경찰은 야간 집회가 이어지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집회는 등록금 '반값'을 향해 계속될 예정이다. 29일 저녁에도 촛불 집회는 열린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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