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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자 할머니, 폐지 팔아 모은 1억장학금 기부하니 마음이 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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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자 할머니, 폐지 팔아 모은 1억장학금 기부하니 마음이 후련"

입력
2011.06.2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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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거칠었다. 대답을 하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정부가 28일 국무회의에서 첫 국민추천포상자 가운데 한 명(국민훈장 동백장)으로 선정한 황금자(87) 할머니는 병상에 있었다. 노환으로 서울 강서구 등촌동 부민서울병원에 입원중인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자신의 생활비를 쪼개 총 1억 원여 장학금을 쾌척한 공로로 훈장을 받게 됐다.

"폐지 모으고…." '어떻게 돈을 모으셨냐'고 묻자 힘겹게 답이 돌아왔다. 황 할머니는 매달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전지원금, 기초생활수급자 생계지원비, 기초노령연금 등을 모아 2006년부터 3 차례 강서구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본인 생활비는 빈병ㆍ폐지 줍기, 공공근로로 해결했다. 이 돈으로 장학기금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중ㆍ고교생을 지원하는 장학재단은 이번 포상에 할머니를 추천했다.

1924년 함경도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3세 때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흥남의 한 유리공장으로 끌려갔다. 3년 뒤 다시 간도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한 할머니는 광복 후 고국에 돌아왔다.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양녀를 데려와 키웠으나 10세 때 죽는 바람에 다시 혼자가 됐다.

할머니는 예전엔 이웃에게 천사가 아니었다. 일본군의 만행으로 한때 정신마저 병든적이 있었다. 강서구의 한 중ㆍ고교 앞 영구임대아파트에 살 때 교복을 입고 운동장에 도열한 학생들을 보곤 일본 순사로 착각했던지 "이놈들을 다 잡아가라"며 구청과 경찰서 등지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당시 등촌3동 사무소에서 근무하던 김정환 사회복지사를 만나 기부의 보람을 알게 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김씨는 "할머니가 첫 기부를 한 뒤 '이렇게 하니까 마음이 후련해'라고 말할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에는 김황식 국무총리가 직접 할머니 댁을 찾기도 했다.

이번 포상에는 13세 때 지뢰사고로 양손을 잃고도 94년부터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 약 4만㎡의 염전을 일군 강경환(51)씨(국민훈장 동백장)도 포함됐다. 1급 장애인인 강씨는 본인도 기초생활수급 대상이면서 96년부터 매년 소금 판매액의 10%를 적립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초기에는 소금 등 기부물품을 집 앞에 남몰래 두고 갔으며, 2001년부터 기초생활 수급을 거부했다.

2001년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된 뒤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에서 손수 병원을 짓고 하루 평균 300명의 환자를 밤낮으로 진료했던 영화 의 주인공 고 이태석(국민훈장 무궁화장)신부 등 총 24명이 포상 대상자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3~4월 국민 추천 361건을 받아 외부심사위원이 참여한 가운데 수상자를 결정했으며 다음달 청와대에서 시상할 예정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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