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10개월 만에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여야 영수회담이 별무성과로 끝나고 말았다. 반값등록금, 가계부채 등 하나같이 국민 생활과 직결된 6개 문제가 의제로 올랐지만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 손을 맞잡았다는 것 외에는 시각의 차이만 드러냈다. 속된말로 '통큰' 정치가 나오리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지만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MB 정권의 임기는 이렇게 3년 반이 지나가고 있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의 행로를 돌이켜보면, 남은 1년 반의 시간이 정권에게 아니 국민들에게 얼마나 험난할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YS가 정치자금 안 받겠다고, 공직자들에게 골프 치지 말라고 호통치던 모습에 우리는 공감했다. DJ가 평양 공항에서 김정일을 포옹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던 기억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두 정권 모두 집권 말기로 넘어가며 IMF사태, 측근 비리 등으로 결국 몰락 아닌 몰락을 하고 말았다. 뒤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한국 정치의 비극성을 상징한 사건이었다. 저마다 민주화, 통일,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시대정신을 내세웠지만 그 끝은 허망했다.
허망한 정권 말기의 시간
지금 MB 정권 말기의 행로를 결정할 것으로 보이는 우리사회의 이슈는 반값등록금, 정치권과 재계의 갈등 같은 데서 드러난다. 실용정부를 모토로 내세운 이 정권의 성격과 어쩌면 딱 맞아떨어지는 것들이다. 반값등록금은 대통령은 자신의 입으로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지만, 대선 당시 공약이었다. 하기야 공약이 한둘이었나, 747(7% 경제성장, 4만불 국민소득, 세계 7위 경제)도 공약이었지만 이게 현 정권 임기 내에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한국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값등록금은 다르다. 잠복해 있던 이 문제는 다음 선거들에서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계산 때문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다시 촛불을 켜들고 나서면서 그 절박함과 실현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집권 말기 경제정책을 책임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문제를 '다차원의 동태적 최적화 목적 함수'를 푸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라고, 알아듣기도 힘든 용어를 써서 비유하며 "정부 재정으로는 풀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리고 정치는 그런 어려운 문제를 머리 싸매고 풀어내라고 국민들이 맡긴 일이다. 온 국민들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등록금 때문에 허덕이는 나라가 한국이라면 당연히 그걸 해결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정치권과 재계의 갈등이란 현상도 반값등록금 문제와 같은 선상에 있다. 집권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대통령의 말과 감세 정책에 환호하던 재계가 감세 철회, 반값등록금 정책 추진을 보고는 태도를 돌변해 정부를 대놓고 비난하고 있다. 입에 담기조차 지겨운 포퓰리즘이란 용어가 동원되는 것은 물론이다. 재계는 반값등록금 실현에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 6조원을 세금으로 충당한다면 그 돈은 결국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올 것이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하지만 등록금 관련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부자감세 정책만 철회해도 16조원의 재원이 마련된다. 4대강사업 등 현 정부의 토건 예산만 줄여도 6조원 마련은 어렵지 않다는 계산이다.
'역사의 그물'을 기억하라
친기업, 반포퓰리즘에서 출발해 친서민, 공정사회를 외치며 뒤늦게 방향 수정을 기도한 MB 정권은 오도가도 못하는 난관에 봉착한 꼴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지금까지는 죽을 쒔더라도 집권 말기에 그나마 허망을 면할 수도 있다. 작가 고 이병주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역사의 성긴 그물이 놓쳐버린 인간군상의 삶을 소설로 쓰겠다." 그는 승자의 기록인 역사가 아니라 그 그물에서 빠져버린 패자의 삶에 대한 기록자를 자처했다.
지금 한국사회의 패자는 비싼 등록금에 허덕이는 대학생, 그들의 부모와 가족, 즉 우리 모두이다. 제대로 된 정권이나 정치라면 그물을 더 촘촘히 짜야 한다. 다차원 연립 미분 아니라 무한 부정 불능 방정식이라도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종오 편집국 부국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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