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한심한 일이다. 여야가 의장석ㆍ위원장석 점거를 금지하는 대신 필리버스터를 도입하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국회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한 지 단 하루 만인 28일 오후 야당의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점거사태가 벌어졌다.
KBS 수신료 인상안을 놓고 한나라당은 당초 합의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민주당은 KBS의 지배구조 개선, 공정성 확보를 선결조건으로 내걸며 ‘9월 처리’를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합의를 깼다는 점을, 민주당은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상대당에 책임을 전가했다. 두 정당 모두 나름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국민 눈에는 구태의 재연으로 보일 뿐이다.
전 날 여야가 국회선진화 방안에 합의했을 때만 해도 기대는 컸다. 의장석 점거 금지 외에 신속처리제도 도입, 예산안 자동상정 조항 신설 등도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속처리제도는 상임위에서 180일 이내에 심사되지 못하면 해당 안건을 법사위로 회부하고, 법사위에서 60일 동안 처리하지 못하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토록 한 것이다. 또 헌법상 처리시한(12월 2일)의 48시간 전까지 예산안 심사가 종료되지 못하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토록 한 것도 나라살림을 정쟁의 볼모로 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평가할 만했다. 섣부르지만 국회에서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야유와 욕설, 의장석 점거와 주먹다짐이 없어지고 해머와 물대포, 쇠사슬과 전기톱이 등장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희망도 생겼다.
그러나 불과 하루 만에 그런 기대와 희망은 우려로 바뀌었다. 그럴 듯한 개혁안을 만들면 뭐하나, 안 지키면 그만인 것을. 그래서 국회법 개정을 논의하는 여야 6인회의에 제언을 하고 싶다. 다른 어떤 조항에 앞서 처벌조항을 구체적이고 엄격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먹다짐을 하거나 흉포한 기물을 사용하면 의원직을 6개월 정지시킨다’는 조항을 두고 이를 철저히 적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누가 감히 의사당에서 폭력을 행사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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