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창설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대량 학살과 반인륜 범죄, 전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기 위한 최초의 상설 법원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C는 국제법의 기둥인 인권과 인도주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장치로 2차 대전 이후 가장 뜻 깊은 국제법 상의 진전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의 송상현(69)변호사가 2009년부터 소장을 맡고 있다. ICC는 창설 이래 6개 국가 또는 지역의 범죄 상황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다. 콩고 우간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케냐 리비아 등 모두 아프리카 국가가 관련됐다.
■ICC는 지금까지 모두 26명을 기소했으나 2명은 사망하거나 기소가 취하돼 24명이 남았다. 이들 중 17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나, 5명만 신병이 확보돼 재판을 받고 있다. 나머지는 형식적으로 지명수배 상태다. 그 가운데 현직 국가원수는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알바시르는 다르푸르 내전에서 대량 학살과 반인륜ㆍ전쟁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돼 2009년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그러나 그는 ICC의 권능과 혐의를 부인했으며, 아프리카연합과 아랍연맹 등 지역국가들과 러시아 중국도 기소에 반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ICC는 27일 국가원수로는 2번째로 리비아의 카다피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올 2월 반정부 시위에 맞서 살인 불법감금 등 반인륜 범죄를 지시한 혐의다. 반정부세력과 무력 개입을 주도한 영국 프랑스 등은 “카다피 퇴진의 당위성이 확인됐다”고 반겼다. 카다피가 더욱 고립되고 세력기반이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른다. 그러나 강제집행 수단이 없어 알바시르와 마찬가지로 상징적 효과에 그칠 뿐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알바시르는 체포영장에 아랑곳없이 이집트 우간다 케냐 터키 덴마크 등을 여행했고, 28일에는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국제사회 반응에서 주목할 것은“카다피 암살을 정당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쟁 100일을 넘긴 영국과 프랑스가 승부수로 특수부대 침투를 통한 카다피 제거를 꾀할 것이란 추측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카다피는 오사마 빈 라덴과 달리 주권국가의 합법적 지도자란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보다는 ICC의 조치는 늘어난 전쟁 비용과 민간 피해, 여론 악화에 직면한 서구의 체면을 살렸다는 논평이 설득력이 있다. 이들 외세는 석유와 전략적 이권을 노린 제국주의적 개입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그렇다면 이제는 리비아 분단을 고착시키는 수습 국면으로 갈 때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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