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속에서 KBS 2TV의 '남자의 자격'을 보았다.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란 부제를 달고 이벤트를 벌이는 그들은 이번엔 호주를 여행했다. '남자 그리고 배낭여행'이란 이름을 내걸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고급여행이었다. 상식적인 배낭여행과 비교해도 그들의 여행은 럭셔리 급이었다.
배낭여행은 배낭을 메고 떠나는 여행이다.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이동은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잠은 침낭이나 저렴한 숙소에서 자는 것을 권한다. 가능한 고독하게 떠나서,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여행하며 그 나라의 사람과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배낭여행의 멋과 맛이다.
남자의 자격은 신나게 달렸다. 지쳤는데도 쉬지 않고 달렸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무조건 달리는 것은 배낭여행이 아니다. 배낭을 오프로드 고급 렌터카에 싣고 가다 잠만 텐트에서 잔다고 해서 배낭여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내 물웅덩이와 싸우며 그들은 호주 서북부에 있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꿈의 여행지인 브룸(Broome)에 도착해 휙 보고 기념사진 찍고 돌아왔다.
브룸 여행은 세계자연유산인 '벙글벙글 레인지'(Bungle Bungle Range)를 몸으로 체험하는 것인데 내 눈에는 배낭여행이 아니라 호주 홍보여행으로 보였다. 그들이 떼 지어 남의 나라 홍보방송을 하는 동안 우리나라에는 태풍과 장맛비로 10여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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