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 한 그릇의 맛과 영양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홍보해 출시 두 달 만에 160억원대의 매출을 올린 농심의 '신라면 블랙'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27일 시정명령과 과징금 1억5,500만원을 부과 받았다. 설렁탕 한 그릇과 비교할 때 '턱도 없다'는 게 제재 이유. 공정위는 실제로 설렁탕과 신라면 블랙의 성분까지 비교하며 광고의 허위ㆍ과장부분을 밝혀냈는데, 업계는 이런 공정위에 대해 "새 상품개발도, 광고마케팅도 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 분석결과, 신라면 블랙은 설렁탕 한 그릇과 비교할 때 ▦탄수화물은 78% ▦단백질 72% ▦철분은 4%에 불과했다. 반면 비만을 유발할 수 있는 ▦지방은 설렁탕의 3.3배 ▦고혈압 뇌졸중 심근경색 등 각종 성인병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나트륨은 1.2배에 달했다.
공정위는 또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가장 완벽한 영양 밸런스는 60:27:13이고, 신라면 블랙은 62:28:10으로 완전식품에 가깝다"고 광고한 부분도 허위 또는 과장이라고 판단했다. '60:27:13'이라는 비율은 일본 농림수산부가 육류 소비 억제, 쌀 소비 촉진을 위해 2005년 발표한 내용으로, 소비자들의 건강에 이상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
공정위는 이에 따라 포장지에 표기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도록 농심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내용으로 공정거래질서를 저해한 정도가 매우 커 과징금도 함께 부과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특히 "기존 신라면 1개에 비해 신라면 블랙의 제조원가 상승액 대비 출고가 인상액이 1.7배에 달해, 품질고급화에 비해 가격이 높게 책정됐다"고 농심이 폭리를 취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공정위의 조치에 대해 농심 측은 "아무런 의견이 없다"고 입을 닫았다. 다만 "신라면 블랙은 정직하게 만든 제품이고, 앞으로 신라면과 함께 세계적인 제품으로 키워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심을 모은 가격인하에 대해서는 "가격은 전혀 논의된 바가 없다"며 인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공정위의 조치를 이행하겠지만 '프리미엄 전략' 자체를 바꾸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식품업계는 이번 사건과 관련, 농심 측이 영양성분 등을 과장해 표시한 것은 잘못이지만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고 높은 가격을 붙인 데 대해 '폭리'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반응이다.
한 과자업계 관계자는 "과자나 라면은 일반적으로 저가 제품으로 인식돼 있지만 언제까지나 저가 제품만 팔라는 법은 없다"며 "종전에 잘 팔리던 베스트셀러는 계속 판매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고급스런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런 노력을 모두 폭리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애초 이번 조사는 공정위가 '물가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신제품 출시를 가격을 높인 신라면을 잡기 위해 시작된 것 아니냐"면서 "공정위가 식품의약품안전청인지, 앞으로도 모든 신제품을 다 성분까지 조사할 것인지 두고 봐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단체등은 저가 상품과 성분 등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프리미엄' 마케팅을 통해 비싸게 판매하는 데 대해 "소비자를 기만하는 상술"이라며 이번 공정위 판정에 대해서도 '솜방망이'징계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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