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면마녀(千面魔女)' 시나리오는 쇼브라더스 측에서 내게 제시해준 것이었는데 주인공이 남자 형사로 돼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조금 수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형사를 여자 형사로 바꿨다. 란란쇼 사장에게 얘기했더니 "왜 여자 형사로 바꿨느냐?"며 의아해했다. 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내가 알기로는 중국 사람들은 여자를 상당히 존중하는 민족이다. 내가 만드는 작품에 남자 관객은 당연히 쉽게 보러 온다. 여자 관객을 유치하려면 여자 형사로 설정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남녀 관객을 폭넓게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란란쇼는 "아! 그 얘기도 맞다. 그러면 여자로 바꾸자"며 순순히 동의했다.
주인공을 여자로 바꾸어 순조롭게 '천면마녀'를 촬영했다. 그때 촬영감독이 처음엔 니시모도라는 일본인이었다가 한 열흘 일을 하고는 세트를 짓는 기간에 다른 곳으로 배치되어버렸다. (지난 회에 술회한 대로 촬영 중 촬영감독 교체는 날 매우 당황스럽게 했지만 세트 짓는 동안이라도 유휴노동력 결손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치밀한 경영방침이었다는 것을 알게 한 바로 그 시기의 촬영감독이다.)
세트 디자이너도 오츠루 라는 일본인이었는데 칼라에 대한 색감이 아주 뛰어났다. 특히 일본화(日本畵) 같이 매우 섬세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내 개인적인 취향과도 아주 잘 부합했던 그 색감이 '천면마녀'에서도 아름답게 구현됐다. 그런 미장센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특별히 오츠루와 내가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세트 디자이너가 중국인이었다면 원색 느낌의 강한 색감이 나왔을 것 같다. 오츠루로 인해 비로소 내가 생각한 바대로 색의 재현이 대단히 부드럽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패션쇼 장면 같은 경우 상당히 화려했고 배경으로 인해 의상이 도드라질 수 있었는데, 이 같은 효과는 오츠루의 역할이 컸다.
배우들이 촬영에 임하는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천면마녀'에 나오는 중국 배우들은 내가 한국에서 일했던 배우들과 달랐다. 한국에서는 주연급들이 대개 겹치기 출연을 했었고 그러다 보니 자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고 촬영현장에 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였다. 그런데 쇼브라더스에서는 주인공들이든 조연급이든 상당히 진지하게 자신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는 모습이었고, 자기가 나오지 않아도 뒤에서 대본을 가지고 대사 공부를 했다. 한국에도 물론 그런 배우가 있지만 거의가 중복된 촬영 일정 때문에 자기가 어떤 역할인지도 모르거나 그나마 자기 대사도 옆에서 읽어줘야만 하는 폐단이 있었다. 중국 배우들은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내 나름대로 정창화식 연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홍콩 감독들은 쉽게 작업하기 위해 세트로 모든 것을 처리하고 싶어 했던 반면 나는 거리로 나갔다. 세트촬영에 비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촬영분량을 로케이션으로 돌리면서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천면마녀' 촬영을 3분의 1 정도 진행시키던 어느 날 란란쇼가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란란쇼 방으로 가 보니 레이몬드 초라는 제작 총지휘자가 와 있었다.(그는 훗날 또 다른 대형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를 설립해서 독립한다.) "무슨 얘기 할 게 있냐"하니 "계약을 다시 해야겠다"고 말했다. "난 이미 5년 계약을 하고 온 지가 불과 몇 달이 안 됐는데 왜 재계약을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3분의 1 정도 촬영한 '천면마녀' 를 편집해서 사장하고 둘이 봤다. 우리는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결정했으니 나중에 다른 소리 하지 않도록 재계약을 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럼 이미 했던 계약은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당신하고 계약한 금액은 홍콩 정상급에 있는 감독하곤 좀 차이가 있다. 우리는 당신이 꼭 필요하고 다른 데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하고 동등한 대우를 해주려고 한다. 재계약을 하자."
난 파격적인 제안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맺은 계약은 5년. 1년에 세 작품씩 하기로 하고 5년 계약한지가 불과 몇 달 전인데 다시 새로운 제안을 하니 뭔가 의심스러웠다.
며칠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궁리해보고 다른 정상급 감독들을 만나서 물어봐도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정상급 감독들은 자신들의 보수에 대해서 얘기하길 꺼려했다. 그런 중에도 호진취안(胡金銓) 감독이 정확하진 않지만 비교적 비슷한 액수를 얘기해 주었다. 그때서야 '아! 좀 차이가 있었구나' 판단하고 재계약을 하게 됐다.
기대 이상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재계약을 한 후 '천면마녀'를 완성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개봉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란란쇼를 찾아갔다. "완성이 됐는데 극장에 왜 안 붙이냐"했더니 그는 "그것은 당신 역할이 아니고 내 역할이다"면서 "당신이 만든 이 작품을 감독들이 전부 먼저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당시 쇼브라더스에는 전속 감독이 이십 오륙 명 되었었는데 "그 감독들한테 다 보라"고 지시를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본 다음에 각자가 편집실에서 무비올라(movieola:영화편집기의 일종)를 가지고 정창화 감독이 액션을 어떻게 만들었나 하는 것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고도 말했다.
란란쇼 사장은 당시 중국 감독들이 만들고 있는 무협영화가 언젠가는 사양길에 접어들 것이라 예상했으며 그 때가 되면 다른 감독들도 액션영화로 전환해야 하니 지금부터 준비하고 연구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뽑아내겠다는 의미였다. "분석이 끝나면 극장에 나갈 것이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한편으로는 어깨가 으쓱해질 수 있는 기분 좋은 일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서운 사람이고 시스템이구나' 하며 경각심이 생겼다. 그 당시 우위썬(吳宇森) 감독이 '외팔이'시리즈로 유명한 장처(張徹) 감독의 조감독으로 있었는데 '천면마녀'를 봤다면서 자기는 "무협영화보다는 이런 현대물 액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너도 편집실에서 한 번 연구해 보는 게 나을 거다. 그럼 도움이 많이 될 거다"고 말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 '천면마녀'가 홍콩에서 개봉하자 대단한 흥행 성과를 거두었다. 내가 예측한대로 남성 관객은 물론 여성 관객에게도 굉장한 호소력을 보인 것이다. 심지어는 '천면마녀' 이전에는 홍콩 영화가 유럽에 수출된 적이 없었는데, '천면마녀'는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에 수출됐다. 내 쇼브라더스 1호 작품이 유럽에 수출된 최초의 홍콩영화로 기록됐고, 공전의 히트까지 하게 된 것이다.
'천면마녀'가 대단한 흥행 성적을 올리게 되면서 내 입지는 더할 나위 없이 공고해 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난 이미 또 다른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고 있었다. '현대물 액션은 이 사람들보다 내가 더 잘 만들고 내 자신의 입지도 완전히 굳혀놓았으니 중국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을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내 입지가 좀 더 단단해지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란란쇼를 찾아가서 "나도 무협영화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란란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당신은 외국 사람이고 현대물 액션을 하기 위해서 스카우트했다. 무협영화는 중국 감독 중 잘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 사람들한테 하게 내버려두고 당신은 현대물 액션이나 계속 만드는 것이 좋겠다." 나는 "아니다. 나도 그 사람들만큼 할 수 있으니 한 번 맡겨봐라"고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섰다. 란란쇼가 "알았다"며 시나리오를 하나 보내주었는데 '여협 매인두'(197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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