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10시 15분. 서울대 법인화추진단 팀장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오늘 끝장토론에서 거의 접점을 찾은 듯 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지난달 30일 시작됐던 사상 초유의 서울대 행정관(본부 건물) 점거 사태 이후 줄곧 평행선을 달려오던 본부와 학생 측이 처음으로 합의안을 도출했다는 의미여서 기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여러 경로로 합의 내용을 문의해도 돌아온 답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서울대의 자세는 더욱 가관이었다. 조금씩 공개된 합의안 내용을 두고는 말 바꾸기가 계속됐다. 한 보직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합의안에 총장의 사과가 포함됐다"고 답한 지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일부 언론의) 사과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언을 뒤집었다. 학생회도 말을 아끼긴 마찬가지였다.
본부가 특급 기밀이라도 되는 듯 쉬쉬한 내용은 26일 학생들이 점거 농성을 풀면서 다 확인됐다. 대화협의체 구성, 총장의 사과 담화문 발표 등 이미 알려졌던 내용들이었다. 본부는 합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지 않아 최종 타결까지 갈 수 있었다고 자평하는 눈치지만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서울대 특유의 '비밀주의'만 확인하는 꼴이 됐다.
서울대는 지금껏 법인화 문제를 마치 성역처럼 다뤄왔다. 되짚어보면 이런 자세가 지금의 내부갈등을 촉발시킨 요인이다. 법인화에 이견을 가진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실패했음에도 수년간 대화 노력이 부족했던 게 오늘의 사태를 초래했던 것이다.
서울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돼 온 대표 국립대다. 그 '국립 서울대'를 법인화하는 문제는 결국 국민의 혈세로 일군 자산을 어떻게 '서울대 법인'에게 넘겨주느냐의 문제도 된다. 서울대 법인화 이슈와 논의 과정을 본부와 학생들이 독점할 게 아니라 온 국민에게 낱낱이 공개해야 하는 이유다. '그들만의 서울대'가 아니라 '국민의 서울대'라는 마음으로 법인화 문제가 논의됐으면 한다.
강윤주 사회부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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