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논란이 어지러운 지난 주, 대학 동기가 전화를 했다. 대기업 임원을 지낸 그는 논란 자체가 못마땅한 듯 했다. "나도 아이들 미국 유학 시켰지만, 원칙대로 하는 게 옳지 않으냐"고 했다. 짐짓 에둘러 말한 '원칙'이 뭔지 모호했다. 자신도 미국 유학까지 뒷바라지 하느라 힘들었고, 그렇게 각자 능력껏 사는 게 자본주의 사회의 순리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이따금 모임에서 만나는 이와 굳이 논쟁할 건 아니었다. 다만"유럽 대학교육은 정부 재정으로 공급하는 공공재"라고 쓴 지난 번 칼럼을 넌지시 비꼬는 게 거슬렸다."유럽의 사례는 자본주의 사회도 대학 등록금이 없을 수 있다는 본보기 아니냐"고만 일깨우고 끝냈다.
이기적ㆍ위선적 등록금 논란
지난 칼럼에서 영국 얘기를 길게 한 이유가 있다. 역사와 현실을 단순화하면, 영국은 선진국 가운데 여러모로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무엇보다 미국식 순수시장경제에 가까우면서도 복지 교육 등 사회제도는 유럽대륙의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 체제를 닮았다. 나라와 인구 규모가 우리와 비슷하고, 소득 수준도 비교적 가깝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이념과 현실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앞서 고민한 경험과 지혜를 참고할 만하다.
대학 무료교육을 지속하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모델을 본받기에는 우리 사회는 이미 오른쪽으로 너무 왔다. 유럽 좌파적 이념과 사회개혁을 외치는 진보 지식인들도 사적 경제활동과 자녀교육 등에서는 지독히 자본주의적인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다. 그런 위선적 인식과 행태에 애써 눈 감은 모든 사회적 논쟁은 부질없다.
영국의 등록금 논란은 우리와 정반대 경로를 걷고 있다. 무료교육 전통을 허물고 1998년 등록금을 도입한 것은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 정부, 이른바 'New Labour'다. 정부 재정으로 무료교육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고, 미래 경쟁력을 위해 투자가 절실하다는 명분이었다. 블레어의'21세기 고등교육'개혁은 대학교육 재정의 15%를 학생들이 부담하되, 부모 소득과 연계해 등록금을 차등 징수하도록 했다. 졸업 후 상환하는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로 부모들의 부담은 늘지 않도록 했다.
노동당 일부와 우파 보수당 및 자유민주당은 대학 등록금에 반대했다. 특히 노동당 좌파의 반대가 거셌다. 좌파의 거물 켄 리빙스턴은 블레어 총리 등 지도부가 서민 출신인 것을 겨냥, "자신들이 올라온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는 2000년 첫 민선 런던시장에 뽑혀 8년간 블레어 정부의 보수정책을 견제했다.
보수당은 그 뒤'등록금과 대출(fee and loan)'제도 지지로 정책노선을 변경했다. 그러나 자민당은 "저소득층은 빚 부담 때문에 대학교육을 기피한다"며 대안으로 '대학 졸업세(graduate tax)'도입을 주장한다. '등록금과 대출'제도는 학자금 대출이 필요한 중간소득계층만 졸업 후 평균 13년간 상환 부담을 진다. 반면 졸업세는 모든 대학 졸업자에게 소득에 따라 징수, 대학 재정에 사용하므로 더 공평하다는 논리다.
정치 뒤집는 상황 올 수도
대학생연맹도 졸업세를 지지한다. 저소득층 학비 감면과 생활비 보조를 포함한 현행 제도는 부모의 계층별 소득과 연계돼 있어 오히려 불공평하다는 이유다. 예를 들어 법학과 경영학 전공자는 평생소득이 인문학 전공보다 평균 30% 이상 많다. 그런데도 무료교육을 받거나 빌린 돈만 갚는 것은 계층과 개인 격차의 완화, 사회 통합 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영국 얘기를 한층 길게 한 것은 그만큼 대학 등록금의 사회적 의미가 복잡한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의 요란한 논란은 대학교육의 이상과 현실, 어디에도 올바로 다가서지 않고 있다. 정치와 언론, 전문가와 개인을 가림 없이 이기적 고려가 앞선다. "대학 구조조정이 먼저"라고 되뇌기만 하다가는, 인내의 한계에 이른 대학 등록금 문제가 난폭한 쓰나미로 정치판을 뒤집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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