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인재 1명이 기업 살린다" 외국 명문대생 2, 3학년때 先확보
어차피 기업을 움직이는 건 사람. 그래서 최고의 자본은 휴먼캐피탈(Human Capitalㆍ인적 자본)이란 말도 있다.
기업들은 지금 인재확보를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 영역은 국내를 넘어 해외인재, 그리고 여성인재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국내 남성'위주의 되어 있는 기업 인재구조가 사실상 깨지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좋은 원석을 아름다운 보석으로 갈고 다듬는 인재양성 시스템 구축작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무대를 뛰는 국내 주요기업들이 인재 확보 및 육성을 위해 어떻게 뛰고 있는지,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1. 삼성전자의 미주지역 휴대폰판매를 책임지는 북미통신법인인 최근 마케팅 디렉터로 영입한 토드 펜들턴. 하지만 그는 휴대폰은 한대도 팔아본 적이 없다. 그는 약 15년 동안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에서만 마케팅과 홍보를 담당해왔다.
그런데도 삼성전자가 그를 스카우트 한 이유는 품목을 떠나, 글로벌 브랜드를 키우고 관리해온 능력 때문이었다. 아디다스 등을 상대로 나이키의 브랜드 파워를 그 정도로 키운 역량이라면, 애플과 한판승부를 벌이고 있는 삼성 휴대폰에도 통할 수 있을 것이란 게 회사 수뇌부의 판단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펜들턴씨의 글로벌 마케팅 경험이 삼성의 휴대폰 브랜드와 미국 소비자를 이어주는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삼성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2.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해 건설기계사업 부문 사장에 안토니 헬샴 전 볼보건설기계 사장을 임명했다. 그는 30년간 볼보에서만 근무해온 '볼보맨'으로, 이 회사를 글로벌 톱3의 건설기계 업체로 키워냈다. 당초 사내에선 "볼보 컬러가 너무 강해서 과연 두산에 적합하겠는가"란 회의론도 있었지만, 세계적 중장비업체인 미국 밥캣을 인수하며 글로벌 브랜드도약을 꿈꾸는 두산인프라코어로선 국적과 출신을 떠나 그의 검증된 경영역량이 아주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두산은 이미 두 번이나 외국인을 경영자로 영입했던 경험이 있다. 2006년엔 제임스 비모스키 서던뱅크 수석부행장을 부회장으로 스카우트했고, 지난해엔 서버러스 캐피털 홍콩법인의 아시아 운영총괄 담당자였던 찰스 홀리 씨를 두산 지주부문 인사총괄 사장에 각각 임명한 바 있다. 두산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이 글로벌 인재를 영입하는 건 당연한 결정"이라며 "앞으로도 필요한 인력이라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해서라도 데려온다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고 말했다.
인재경쟁은 전쟁 수준
좋은 인재를 확보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은 이미 뜨거워 질대로 뜨거워 진 상황. 재무구조도 중요하고, 기술력도 중요하고, 브랜드나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 모든 자산과 역량을 움직이는 건 사람의 힘이란 인식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평소 'S급(최고급)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사장보다도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원이 나와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구본무 LG회장 역시 "좋은 인재확보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고 계열사 경영진에게 수시로 당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재확보경쟁의 패턴도 바뀌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유명 로펌들이 아이비리그 법대생들을 변호사 시험 합격도 전에 이미 '선(先)확보'하듯이, 혹은 미국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고교생 유망주과도 접촉하듯이,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우수대학 학생들에 대해선 졸업전, 아예 대학 2,3학년 때부터 눈독을 들이며 채용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 국내 대기업 해외채용담당자는 "외국의 대학에서는 재학생 시절부터 이미 인턴십 등을 통해 취업활동에 들어가기 때문에 경쟁업체보다 먼저 접촉하지 않으면 우수 인재를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세부적인 조건을 밝힐 수는 없지만 대우도 꽤 파격적인 편이다"고 말했다.
화학적 결합을 유도하라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외국인 임직원을 포용하라"고 사내에 지시했다.
사실 삼성전자는 매출액뿐 아니라 인적 구성에서도 이미 글로벌 기업, 나아가 사실상 다문화기업이 됐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임직원(해외사업장 포함) 가운데 외국인 임직원 비중은 약 49.8%에 달하고 규모는 올해 처음으로 10만명으로 돌파할 전망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 임직원 역시 약 1,000여명에 이른다. 단순히 인재를 채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존 조직과 융화까지 시켜야 하며, 그런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인재확보도, 글로벌 성장도 불가능하다는 게 최 부회장의 판단이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채용정책은 미국 유럽 중국 등 거대 시장뿐 아니라 아프리?같은 미개척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최 부회장은 지난 3월 아프리카 시장을 둘러본 다음 "현지 매출을 2배 이상 늘리겠다"고 밝혔는데, 회사는 이를 위해 유능한 현지인력 채용을 확대키로 했다.
화학적 융화를 위한 노력도 병행된다. 본사 근무 한국직원이 해외현지에 근무하듯, 해외에서 채용한 외국인을 서울에서 일정기간 일하도록 하는 '본사 역파견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에컨대 수원사업장에서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에서 온 임직원들을 위해 현지식 뷔페까지 운영할 정도다.
LG전자도 지난해 말 5만6,000명이었던 외국인 임직원수가 지난 상반기 말 현재 6만1,000명까지 늘었다. LG전자는 2005년부터 매년 '테크노 컨퍼런스'를 개최, 경영진이 직접 현지 인재 발굴 투어에 나서고 있으며 올해 3월에도 미국에서 스마트폰 연구ㆍ개발(R&D) 인력을 채용했다.
외국인 임직원들의 안정적인 국내 정착을 위해 LG전자는 주택 구입에서부터 취업비자 발급 및 자녀들의 국내 학교 입학까지 별도의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우수한 글로벌 인재의 경우엔 뛰어난 업무 능력과 함께 자부심도 강한 편이어서 상하 수직적인 조직관계에선 그들의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다"며 "토론과 협의를 통한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 해외 채용설명회·면접 현장 오너들이 나서 진두지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최근 그룹 인사팀으로부터 해외인재 확보실적을 보고 받고는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일단 채용한 인원 자체가 양적으로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그룹 실무진에게 "작년엔 내가 직접 미국에 가서 인력을 뽑아왔는데 올해는 인사팀을 보냈더니 반의 반도 못 데려왔다"면서 "앞으론 내가 직접 가야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김 회장은 지난해 4월 미국 뉴욕, 보스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4개 도시를 차례로 방문, 24개 유수 대학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가진 채용설명회를 직접 주재했다. 그룹 관계자는 "오너가 직접 채용현장을 왔으니 학생들도 회사에 대해 신뢰감을 갖게 됐고 그만큼 좋은 인재가 몰릴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김 회장은 "앞으론 필요하다면 오대양 육대주를 내가 직접 다니겠다"고 말했다.
기업간 인재확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직접 뛰는 오너나 CEO들도 많아졌다. 직접 채용설명회에 참석하는가 하면, 아예 면접 심사위원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한 대기업관계자는 "오너나 CEO가 면접에 들어가면 확실히 보는 눈도 다르다"고 말했다.
두산그룹도 오너가 직접 뛰는 케이스다. 두산은 기회 있을 때마다 '2G'(Growth of People, Growth of Business)를 강조하는데, 우수한 인적 자본 확보를 통해 사업을 키워나가겠다는 얘기다. 현재 두산의 글로벌 인재 확보전은 박용만 ㈜두산 회장과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 등 오너 일가가 최선두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그룹측은 전했다.
특히 박 회장은 1999년 ㈜두산 사장 시절 해외 MBA 선발제도를 도입했고, 이후 매년 11월 미국 현지로 날아가 채용면접을 주관하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2000년대 이후 박 회장 주도로 그룹의 사업구조가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완전히 바뀌었는데 이 같은 사업 재편작업은 그에 필요한 사람을 확보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요즘 LG그룹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LG화학의 김반석 부회장. 그는 지난 4월 16~17일 미국 뉴저지주 티넥에 머물면서 이틀간 진행된 'BC 투어'(Business & Campus Tour)를 직접 주재했다. BC투어는 비즈니스 리더의 해외출장과 연계해 현지 우수인재를 대상으로 현장 인터뷰 등을 실시하는 일종의 채용설명회. 김 부회장은 2006년 대표이사 사장 취임 후 한번도 거르지 않고 미국 현지 채용행사를 주관해왔다.
이번 행사는 미국 17개 대학 학부생 및 석ㆍ박사과정 학생 600여명이 지원하는 등 성황리에 진행됐다. 김 부회장은 2차전지ㆍLCD 유리기판 사업에 필요한 30명을 현장에서 즉시 채용하면서 "미래 신사업의 성패는 남보다 먼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데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LG화학은 김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중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에서의 채용행사 개최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해외 우수인력을 채용하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젠 더 이상 실무팀에만 맡기지 않고 최고경영층이 직접 나서고 있다"면서 "그만큼 기업경영에서 인적자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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