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6월 27일, 이듬해 멕시코월드컵을 앞두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중남미 예선 최종전이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다. 1,2차전 승리를 나눠가진 양국은 치열한 접전을 벌였고 결과는 엘살바도르의 3대 2 승리였다. 그러나 욕설과 폭력으로 얼룩진 이 경기는 결국 100시간 전쟁으로 알려진 축구전쟁으로 비화했다. 국경선 설정 등 정치, 경제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나라가 축구 경기를 계기로 감정이 더욱 악화해 전쟁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20세기 초 토지 개혁에 실패한 엘살바도르의 수 많은 농민들이 온두라스 영토로 밀입국해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온두라스는 69년 농지개혁을 실시하며 엘살바도르 농민들을 대거 국외로 강제 추방시켰고 이 때부터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이 와중에 1970멕시코월드컵 중미예선이 시작되고 양국은 69년 6월 6일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1차전을 치렀다.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진 이 경기에서 홈 팀인 온두라스가 일방적인 응원을 받으며 1대 0으로 승리했고 2차전은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열렸다. 홈 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원정대가 불 뿜는 응원 대결을 펼쳤지만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린 엘살바도르기 3대 0으로 승리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격한 응원으로 대립했던 양국 관중이 난투극을 벌였고 수적으로 불리한 온두라스 응원단은 일방적으로 집단 린치를 당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온두라스 전역에서는 거주하고 있던 엘살바도르 국민들을 찾아 내 무차별 보복 테러로 맞섰고 이내 양국은 통상교역을 금지하고 세계인권위에 제소하더니 6월 23일 단교를 선언했다. 다혈질의 라틴아메리카답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최종전은 결국 제3국인 멕시코에서 열렸다. 응원단보다 경찰이 더 많았던 이 경기는 축구 경기가 아닌 집단 격투기로 변질했고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엘살바도르가 3대 2로 승리하며 월드컵 진출권을 따냈다. 하지만 이 결과는 외교적 비난과 자국에 있던 상대 국민들에 대한 테러로 이어졌고 마침내 7월 13일 엘살바도르는 전쟁을 선언하고 온두라스를 침공했다. 선제 공격의 효과를 본 엘살바도르는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고 2,000여 명의 사상자를 남긴 온두라스는 100시간이 지난 패전 상태에서 미주기구의 중재로 휴전에 합의했다. 국교 단절 상태이던 양국은 80년 페루 리마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지금도 축구는 전쟁으로 불려지곤 한다. 가히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라 하겠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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