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코미디의 지존으로 자리잡은 KBS2 ‘개그콘서트’(개콘)가 7월 3일 600회를 맞는다. ‘개콘 안보면 학교에서 직장에서 대화가 안 통한다’는 말은 1999년 9월 4일 첫 방송 이후 10여년째 유효하다. 23일 오후, 비 오는 날 그야말로 먼지 나게 뛰고 구르며 600회 특집 준비에 한창인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의 개콘 연습실을 찾았다. 선배들 앞에서도 절대 주눅들 것 같지 않은 ‘두분토론’의 막무가내남 박영진과 ‘생활의 발견’에서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개콘의 기대주로 떠오른 신보라가 일일 기자로 나서 개콘의 주역들을 인터뷰했다. 개콘 최초 기획자 박중민 EP, 연출을 맡고 있는 서수민 PD, 이상덕 작가, 초창기 멤버로 노장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김준호 김대희 박성호 등이 숨은 얘기를 들려줬다.
600회를 맞는 그들의 소회
신보라=“EP님은 특히 600회를 맞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박중민 EP=“개그맨들에게 너무 고맙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코미디 프로그램이지만 아직 작업환경이나 연기자들 처우나 부족한 부분이 많다. 새로운 피가 계속 수혈돼야 발전이 있는데, 개콘은 스타들도 많았고 신인들도 제 역할을 잘해주고 있어 희망적이다.”
박영진= “서 PD님은 휴가도 못 가면서 일하지 않나.”
서수민 PD=“전 국민이 코미디 하루 쉬는 날을 만들면 안될까(웃음). 그러면 (휴가를) 갈 수 있을 텐데. 개콘 PD라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도 반기면서 잘 보고 있다고 하더라. 그럴 때 엄청나게 보람을 느끼고 힘이 불끈 난다.” 개콘은 수요일 녹화 앞뒤로 월화목금 나흘을 함께 모여 아이디어 내고 연습하는 등 주 5일을 동고동락하는 체제로 운영된다. 매주 목요일 진행되는 새 코너 ‘검사’에서 경쟁을 뚫고 발탁돼야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신보라= “이상덕 작가님은 유명한 낚시광인데 코미디와 낚시 중 뭐가 더 좋나.”
이상덕 작가=“사실 전에는 코미디 잘 안 봤다. 연속극도 잘 안 봤으니. 그런데 몇 년째 개콘 작가로 코너를 보면서 전혀 질리지 않는다. 매주 새롭고, 새로운 개그 스타도 등장하고. 개그맨들이 존경스럽다.”
박영진=“김준호 선배님은 원년 멤버인데 아직도 인기를 높다. 비결이 뭔가.”
김준호=“개그는 조정경기처럼 철저한 협업이다. 나 혼자만 잘해서는 안된다. 매일 오후 1시까지 출근해서 동료 후배들과 개그 짜는 게 일상이다. 별다른 비결은 없다. 서로 얘기 들어주면서 협업하는 거지. 내가 잘한 게 아주 ‘조금’(눈썹을 치켜 뜨고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있겠지만.”
유행어, 그리고 라인의 문제
이상덕 작가는 최고 유행어를 꼽아달라고 하자 1년에도 20,30개의 대박 유행어가 쏟아진다며 망설였다. 최근 요란한 복장의 경찰들이 등장하는 ‘꽃미남 수사대’의 ‘소 쿨(So Cool), 소 핫(So Hot), 소 섹시(So Sexy), 소 인크레더블(So Incredible)’은 강렬한 효과가 있는 유행어를 넣자는 서 PD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단다.
신보라=“박성호 선배님은 ‘꽃미남 수사대’에서 후배들보다 더 튀는 분장을 하는데 원성이 좀 있지 않나.”
박성호=“다 합의해서 하는 거다. 이게 일종의 점층법적인 개그인데, 내가 연륜이 좀 있으니까 민망한 짓을 소화해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 역할을 맡은 거다.”(최근 박성호가 토크쇼에 출연해 개콘에 김대희-김준호, 이수근-김병만 등 라인이 있다고 말한 것이 떠올라 그의 라인은 누군지 물었다) “흠, 라인이라면 지금 개그 재활치료에 여념 없는 황현희, 건강상 이유로 쉬고 있는 김대범, 그리고 안상태 정도? 개콘에 현존하는 최측근 최효종도 있지만 곧 군대가게 되니 국방부 라인이 될 테고…. 암암리에 내 라인이 되고 싶어하는 후배가 참 많지만 함부로 뽑지 않는다.”
“이기주의의 표본 성호 형을 닮아 라인도 마찬가지다.”(김준호) “같이 있는걸 본 적이 없다.”(이상덕 작가) 옆에서들 퉁박을 주자 박성호는 “유령회사 같은 거다. 이스라엘 같은 민족이랄까. 우리는 꿈속에서 자주 단합대회를 한다”고 눙친다.
신보라=“김대희 선배님은 눈에 띄는 후배가 있나?”
김대희=“보라가 연기를 전공한 친구가 아닌데 기본적으로 망가지는 타이밍을 잘 알고, 노래도 미모도 뛰어나 눈 여겨 보고 있다.” 박성호가 때를 놓치지 않고 “근데 왜 1년 동안 소라라고 불렀어? 마음은 알았는데 이름을 몰랐구나” 하고 면박을 준다.
박영진=“선배님이 했으면 더 잘했을 것 같은 코너가 있다면?”
김대희=“김준호가 하고 있는 ‘감수성’의 왕 역할. 내가 했더라면 최소 두 배는 더 잘 살릴 수 있었다.”
KBS 별관이 깨진 컵으로 뒤덮인 날?
박영진ㆍ신보라=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꼽는다면?”
서수민 PD=“2,000년 초창기 조연출 때 큰 사고를 쳤다. 그날 분위기가 좋아서 즉흥적으로 ‘다음주 수험생 여러분들 모두 오십시오’ 했는데 KBS 별관 녹화장에서 대방 전철역까지 줄을 섰다. 미안해서 선물로 머그컵이라도 줘서 돌려 보내자 했는데 무기가 되어 날아왔다. 결국 별관 앞이 깨진 사기로 뒤덮였다. 그때 녹화분을 보면 이태선 밴드 사이사이에도 사람들이 끼어 앉아있는 걸 볼 수 있다(웃음).”
박중민 EP=“2000년 5월 1일 노동절 고대에서 첫 야외 공연을 했다. 수용인원은 2만명이 좀 못 되는데 엄청들 왔다. 교통방송에서도 차 막히니까 돌아가라고 하고. 무장공비처럼 사람들이 산을 넘어서 몰려들더라.” 김준호도 “웃음이 야구장에서처럼 앞에서부터 파도처럼 일렁이는데 감격적이더라”고 거들었다.
김대희=“나는 ‘바로 이순간’이다. 1회 때 연출 조연출이었던 분들이 EP와 연출로 600회를 맞았고, 청주대 선배 이상덕 작가님과 함께 하고 있고.” “이게 바로 김대희가 오래 가는 이유다. 생명연장공학의 비밀이랄까.”(김준호)
김준호=“최근 광주공연도 기억에 남는다. 지방에 가면 환호성이 더 커서 기분이 참 좋다. 선후배들끼리 MT가는 기분도 들고. 외국에 가도 호응이 좋을 것 같다. 한류 코미디도 있어야 하지 않나.”
서수민 PD=“달인은 일본에 갔었고, 언어가 안 통해도 웃기는 ‘발레리노’나 ‘꽃미남 수사대’ 같은 코너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한 번 가 볼까. 협찬하겠다는 기업이 있다면 적극 추진하겠다.”
개콘의 전설들,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개콘 원로’ 세 명에게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하는 이들에게서 자부심과 묵직한 애정이 느껴졌다. 김대희는 “개콘은 성스러운 무대라고 생각한다. 예능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지 말고 처음 열정 그대로 열심히 해줬으면 한다”고 했고, 김준호는 “아직은 개그맨들의 가치가 저평가 되어 있다. 10년 후에는 선진국처럼 개그맨들이 시트콤도 영화도 다 장악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준호는 발판삼지 말라는데 웬 딴소리냐며 여기저기서 한 소리 하자 “후배들아 열심히 해라. 나대지 말고”라고 일갈한다.
박성호는 “잠잘 때 빼고는 아니 꿈속에서도 개그를 생각한다. 후배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자랑을 하고 있다”는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너희들보다 나은 건 좀 오래 했다는 거다. 나보다 더 오래하고 싶으면 나보다 더 오래 개그를 생각해라.”
개그맨들은 평상시에 좀 과묵한 편이다. 진지하고 예의바른 청년 박영진은 동기들끼리 있을 땐 엄청 웃긴다는데 ‘평소 잘 안 웃기는 1인’으로 뽑혔다. 반대로 박성호는 지나치게 남 웃기는데 욕심 많은 개그맨으로 지목됐다. 서 PD는 “기본적으로 개그맨들은 늘 웃기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고 그 승부욕이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다”고 귀띔한다. 꿈 속에서도 개그를 생각한다는 박성호는 최근 자비를 털어 개콘 600회를 기념하는 음반까지 만들었다. 유세윤의 UV가 히트친 ‘이태원 프리덤’을 개사한 ‘연구동 프리덤’. “차라리 밥을 한 번 사지” 하는 원성이 쏟아졌지만, 개그 욕심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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