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서 여성은 무슬림이자 어머니이고 군인이자 시위대며 기자이면서 자원봉사자며 시민이다." 리비아의 한 야당신문이 아랍 민주화 시위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표현한 문구다. 아랍의 봄에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여성의 인권 신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아직도 시위 현장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운전대를 잡았다고 구금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들은 더 이상 순응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항의했고 연대했다.
운전하고 싶은 사우디 여성
지난달 21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마날 알셰리프(32·여)는 한밤중 집에 가려고 했지만 30분을 걸어도 택시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남자형제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나를 집에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 아이처럼 울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후 이러한 현실에 항의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고 직접 운전하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렸고 당국에 연행돼 9일만에 석방됐다. 사우디에는 여성 운전 금지를 규정한 법 조항은 없지만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의 율법해석(파트와)에 따라 사실상 여성 운전을 봉쇄하고 있다.
이 사건에 자극받은 운전하기를 열망하는 사우디 여성들은 페이스북과 거리에 모여 운전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운전을 원하는 사우디 여성'이라는 이름의 단체도 생겨났다. 운전허용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집단행동은 1990년 11월 47명의 여성들이 차량을 직접 운전했다 체포된 이후 20여년 만의 일이다. 온라인에서는 시위 여성들을 격려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고,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21일 "여성운전금지 철폐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행동은 용감하며 옳다"고 지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여성 운전허용이 여성참정권 확대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며 제도 개혁에 주저하고 있다.
민주화 시위에 제 몫 다한 여성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아랍세계에 부는 바람이 '수동적이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희생자'라는 아랍 여성의 이미지를 날려버렸다고 평가했다. 이집트 바레인 예멘 시위에서 민주화 구호를 외치고 최루가스에 맞서고 사이버공간에서 글을 올리고 전략을 짠 주역이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일간지 예루살렘포스트가 중동 시장전문조사기관(YouGovSiraj)을 인용 보도한 것에 따르면 조사대상 1,250명의 아랍 여성 중 85%가 집에서 인터넷에 접속하고 71%는 소셜네트워크를 사용하며 매일 온라인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이집트에선 26세 여성 아스마 마흐푸즈가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퇴진을 위해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려 유명세를 탔다. 바레인에서는 여성 정치운동가 무니라 파크로가 정치적 개혁을 요구하며 진주광장시위의 대변인으로서 시위조직을 이끌었다. 예멘에서는 인권 운동가이자 기자인 타와쿨 카르만이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2007년 5월 이후 매주 화요일 사나 대학 앞에서 비폭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레바논 일간지 더데일리스타는 21일 이들은 누군가 구조해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적극적 참여자들이라며 비전과 전략, 기술, 네트워크, 용기를 주는 지도자들이라고 전했다.
여성들의 이외에도 시위에 참가했다 부상당한 이들을 치료하며 의사, 간호사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또 슈퍼마켓 밖에서 피켓을 들고 나와 시위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비폭력 시위에 대한 워크숍에 참석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명예살인 처벌 등 제도화 과제
여성들의 권리찾기가 진행되면서 제도적으로 여권을 보호하는 변화도 보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12일 "명예살인 가해자 처벌을 면제하는 법을 대통령령을 발동해 중단시키겠다"며 명예살인을 인정했던 법률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 퇴진 후 구성된 새 내각에 여성이 포함되지 않자 여성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서 여성의 정치참여가 가능토록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얼마나 제도화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최근 민주화 시위에 참가한 여성의 처지가 단적인 예다. 여성들은 시위에서 큰 몫을 했지만 그만큼 희생도 컸다. 리비아 시리아 이집트 등에서 시위 참여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과 처녀성검사 등이 밝혀지며 파문이 일었다. 그런데도 이러한 피해가 제대로 규명되거나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한 이집트 시위여성은 타흐리르광장을 찾은 캐서린 애쉬튼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고위대표에게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할 때는 여성을 필요로 하다가 이제는 우리가 집에 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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