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 아닌 아동으로 보세요… 교육은 섬김입니다"
우리 시대의 교육에 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해온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전성은(67) 전 거창고등학교 교장이다. 거창고 하면 최초의 공교육 대안학교로 교육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1970년 고교로서는 처음으로 3선개헌 반대시위가 일어났고, 학교 졸업생에게 직업 선택의 첫째 조건으로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고 권하는, 그렇지만 명문대 진학률도 높은, 특별한 학교다. 전성은 전 교장은 거창고에서 1965년부터 2006년까지 교사, 교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가 교육현장에서 오랫동안 느끼고 생각한 바를 담은 (메디치 발행)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본사에서 같은 주제로 강연을 했다. 27, 28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도 강연을 한다.
거창고를 특별한 학교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강연에서 그는 1956년 거창고를 인수해 학교의 틀을 만든 자신의 아버지 고 전영창 교장과 원경선 전 재단 이사장, 고 홍종만 교감 등 세 사람에게서 배운 대로 가르쳐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과 관련해 평생 이 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학생이 아니라 아동으로 보라는 것, 인간으로 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이라고 하면 선생을 생각하게 되어 좋지 않습니다. 학생은 인간인데 다만 어린 시절에 속하는 인간입니다. 인간이므로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런 교육적 인간관 속에서 학교교육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삶의 기쁨과 신비를 알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다.
이렇게 보면 아이들은 학교교육이 섬겨야 할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학교도 아이들을 위해서 있고, 국가도 교회도 아이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학교의 명예나 국가의 영광을 위해 아이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을 2년 간 맡았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서울에 사는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기에 가장 어려웠던 것이 바로 학생이 아니라 아동으로 보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서울대도, 연세대도, 지방대도 모두 아이들을 위해서 있어야 하는데 그게 서울 사람들에게는 안 통했다"고 한다.
거창고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학교다. 그래서 종교적인 가르침도 있다. 죄 지으면 개인도 망하고, 가정도 망하고, 학교도 망하고, 교회도 망하고, 국가도 망하므로 죄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두 이야기를 젊었을 때 듣긴 했지만 제대로 소화를 못 시키고 있다가 정년퇴직할 때쯤 되니까 그 말의 깊이를,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이런 교육관에 따라 그는 인재양성론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학교교육의 목적이 인재 양성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기능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학교교육은 근ㆍ현대로 넘어오면서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사람을 기른다'에서 국가마다의 사정에 따라 '근ㆍ현대화를 이끌 지도자를 기른다' '독립을 위한 인재를 기른다' 는 등으로 개념이 확대됐다. 그러한 학교교육이 내걸었던 교육의 목적 즉 인재 양성은 정의, 자유, 공존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길러낸다는 의미에서 '평화 추구'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고 그는 풀이했다. 통치계급이나 식민통치국가를 위해 인재를 길러낸다는 뜻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의 목적은 평화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울 때 싸우지 말라고 가르치듯이 학교에서도 인류가 사이좋게 서로 공존하고 도우면서 사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요즘 우리 입시제도는 네가 들어가면 내가 못 들어간다는 경쟁으로, 고대국가와 식민국가에서 국민을 통제하던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인 제도로 비춰진다. 그는 학교교육에서 아이들은 줄 세우기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재능과 소질, 관심을 최대화시켜야 할 대상이며, 이것이 학교교육이 학생을 섬기는 방법이라고 '섬김의 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교육 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의 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혁신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많은 이들이 법으로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지만, 법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올바른 교육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의 왕정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민주주의 공화국, 3권 분립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제도는 좋은 힘, 나쁜 제도는 나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교육개혁에서도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학교, 교육행정기구, 평가기구 이 셋이 수평적 보완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강연 후 독자와의 대화에서 장학사로 있으면서 거대한 조직의 힘에 좌절해 '어찌하면 되겠느냐'고 묻는 졸업생의 질문에 "배운 대로 답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영웅이 아니라 못난 사람, 소수, 약자,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바꾸는 것이다. 씨만 뿌리면 언젠가 결실을 맺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또 '월급이 적은 쪽으로 가라' 등 그가 만든 거창고 '직업 선택의 십계'가 지금도 유효한가 하는 질문에는 "그것은 기독교의 상징이라고 하는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표현한 말로,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십자가가 의미를 갖는 한 유효하다"고 말했다. 체벌에 대한 질문에는 "저희가 어릴 때의 문화는 학생을 때리지 아니하면 선생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문화가 바뀌었으므로 학생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반성하게 하는 방법으로서 체벌을 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교교육이든 종교교육이든 교육이 할 수 없고 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 있다"면서 "인격교육이 그것"이라고 했다. "인격이란 사랑하는 힘을 말합니다. 잘못된 사랑이 올바른 사랑으로, 거짓된 사랑이 참된 사랑으로 사랑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 인격의 성숙입니다. 이건 학교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학교교육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교육은 뭘 하면 안 된다고 하는 데서 머물러야지 뭐 해야 한다고 하면 위험합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왔는데 아직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 "인간이 국가·종교보다 소중"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이 특히 강조하는 말이 있다. "국가는 한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교육관은 우리 사회의 상식과는 배치되는 듯하기도 한 이러한 인간간 위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21세기에 들어와서도 학교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직업군의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늦었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한 인간이 국가를 위해 태어나는가, 아니면 국가가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그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분명히 하고서야 교육학이 성립될 수 있다고 했다.
"인간론 하면 으레 성선설과 성악설을 떠올리게 되지만 예수나 부처의 가르침을 보면, 두 분 모두 인간에겐 선과 악 두 가지가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분들의 종교적 표현을 학교교육론 입장에서 보면 인간을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존재인가 아닌가로 보았다. 두 분 모두 인간이 국가보다도, 종교보다도, 어떤 가르침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고 말했다.
"나도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너도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나의 생명과 몸과 재산도, 이웃의 생명과 몸과 재산도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그는 이어"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아(我)는 부처님 본인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예수는 한 인간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다. 아동은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 전성은
●1944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65년부터 거창고 교사로 일했다. ●아버지인 전영창
(1817~1976) 전 교장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76년부터 2006년까지 거창고 교장 직무대리와 교장, 같은 재단 소속인 샛별초
등학교, 샛별중학교의 교사와 교장을 역임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기관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요즘은 학교
농장에서 부친이 남긴 원고를 정리하고, 구약성서를 20대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현대어로 옮기고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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