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은퇴'란 일자리에서 물러나 한가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요즘 많은 베이비붐 세대 또는 고령자들은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한다. 이제 은퇴는 인생 역정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과정(transition)의 일부를 의미하게 되었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교육수준도 높고, 사회활동 욕구도 왕성하다.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높고,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연령 기준만으로 고령 인력을 폄하하는 정책과 관행은 명백히 연령 차별이며, 구시대의 산물이다. 그보다는 은퇴하는 고령인력을 인재집단으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령 인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나가면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가에도 큰 혜택이 있다.
사회적 편견과 달리 고령 인력은 젊은 세대에게 없는 장점이 있다. 그들은 조직에서 경험과 지혜의 보고(寶庫)이며, 지식의 전수자 역할을 한다. 매뉴얼로 전달할 수 없는 암묵적 지식을 보유한 인재 집단이다. 2006년 미국은퇴자협회(AARP)에서 회사 경영진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영자(79%)는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고령 근로자의 은퇴가 기업의 재무적 성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경영층의 87%는 고령 근로자의 지식을 보유할 경우, 사업에 큰 혜택이 있다고 대답했다.
고령 근로자는 서비스 산업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고령 근로자는 문제 해결 능력이 탁월해 고객에게 존경을 받는다. 또 젊은 세대보다 근로에 대한 태도가 우수하고, 직장에 대한 충성심도 강하다.
2010년 미국의 퓨 리서치센터(Pew Reserch Center)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조사대상 중 4분의3은 고령 근로자의 근로 자세가 젊은 세대보다 모범적이라고 대답했다. 또 고령 근로자는 높은 소득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제 또는 전일제 근무 등 다양한 근무조건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장점도 있다.
고령 근로자는 이전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교육분야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미국 고령자들의 30%가 교육산업에서 제2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은퇴한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영입하여 활용하는 교육관련 단체가 많다.
그들은 단지 교사로서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조직의 중대한 현안과 대형 프로젝트에 대해 조언하고, 다른 교사와 직원들의 멘토 역할도 수행한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산하단체인 엔코프(EnCorp)는 은퇴한 회사 내 전문가들을 교사 또는 멘토로 활용하고 있다. 엔코프는 은퇴한 전문가를 활용해 전문 인력이 부족한 수학과 과학 분야의 훌륭한 교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대형기업들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고령 인력의 가치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직장의 인력구조와 직원의 은퇴시기를 생각하지 않는다. 장래에 회사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도 평가하지 않고 있다. 은퇴하는 유능한 고령근로자를 재활용하고,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회사에 계속 보유하는 방법 또한 고민하지 않는다.
미국의 편의점 체인업체인 CVS는 '장년 근로자 프로그램'을 운영해 50~99세의 고령 인력을 채용했다. 이 회사는 고령자를 적극 지원하도록 하는 채용 프로세스를 도입, 최근 고령 인력 비율을 18%(1990년대 초 6%)까지 늘렸다. 또 금융서비스 회사인 피델리티는 고령 인력을 채용해 퇴직연금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고객에게 은퇴에 대한 생생한 조언을 제공하면서 고객 피드백에 대응한다.
대형 컨설팅사인 딜로이트(Deloitte)는 라이프 사이클과 가족 형태의 변화를 반영해 종업원들의 진로 방향을 설정했다. 종업원들이 스스로 직무량과 커리어 발전 속도를 조정하도록 한 결과, 딜로이트는 최고의 인재를 더 많이 보유하고, 고객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증진해 수많은 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인생 이모작이라는 말처럼, 이제는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난 후 제2의 커리어를 추구하는 시대가 됐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고령자들은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일하고 있다. 우리는 인생의 장래를 멀리 내다보며, 비상 상황에 대비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학습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강화하고 보완하는 것도 은퇴 후 커리어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마지막으로, 고령인력의 지식과 경험은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고령 인력의 지식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할 것이다.
박성민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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