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다. 상식의 잣대로 접근하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다. 충무로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한 영화 '풍산개'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밑바탕으로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전개한다. 상식을 뒤집는 설정과 대사로 낯선 웃음을 안기고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장르라는 기존 틀로 정의할 수 없는 무규칙 변종 영화. 굳이 따지면 분단 멜로 블랙 코미디라고 할까.
돈을 받고 남북을 오가며 이산가족의 영상편지와 물건 등을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사나이(윤계상)와 평양 여성 인옥(김규리)이 스크린 중심에 선다. 남한에 귀순한 북한 고위인사가 애인 인옥이 보고 싶어 사나이에게 일을 맡겨지면서 영화는 가속도를 낸다. 사나이를 이용만 하고 간첩으로 잡으려는 국가정보원의 음모, 귀순 인사의 사나이에 대한 질투, 인옥의 연정이 겹치며 감정의 진폭이 깊어진다.
영화에서 사나이는 장대 높이뛰기로 휴전선 철책을 넘은 뒤 평양에서 찾아낸 인옥을 자전거에 태워 3시간 만에 데려오는 신공을 펼친다. 국정원 요원이 "우리가 배워야 해"라며 혀를 내두른다. 상식을 깨는 설정은 이뿐이 아니다. 귀순 인사를 암살하기 위해 남파된 간첩들은 남쪽의 자장면과 담배 맛에 홀려 마음이 흔들린다. 국정원 요원의 지질한 행태도 헛웃음을 부른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빠른 전개, 남녀의 애절한 사연과 포개지며 기이한 상승효과를 낸다.
남북 요원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나이를 고문하며 자꾸 묻는다. "정부에 섭섭한 북파(공작원이)냐. 공작금 끊긴 남파(간첩이)냐" "넌 어디야? 남조선이야 북조선이야?" 남북교류가 끊긴 시대, 냉전으로 회귀해 버린 한반도의 현재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으로 들린다.
김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아름답다'로 데뷔한 전재홍 감독의 두 번째 장편. 김흥수 화백의 외손자로 성악을 전공한 그는 극중에 나오는 슈만의 가곡 '연꽃'을 직접 불렀다. 일본 배우 오다리기 조가 '북한군1'로 카메오 출연하지만 알아볼 수 없게 처리했다. 23일 개봉했다.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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