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더니 영화 '풍산개'로 스크린에서도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잠재력이 있다"는 미적지근한 평가는 이제 거둘 때가 됐다. 아이돌 그룹 god 출신이라는 족쇄 아닌 족쇄도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여의도와 충무로를 오가며 그가 보여준 최근의 행보는 든든하기만 하다.
윤계상을 만났다. 22일 늦은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진지했다. 반듯하게 자란 훈훈한 남자 윤필주('최고의 사랑')와 비무장지대를 질주하는 야생마 같은 사나이('풍산개') 사이 어딘가에 그의 실존이 있는 듯했다.
윤계상은 23일 개봉한 '풍산개'에서 별난 역할을 맡았다. 남북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며 사람과 물건을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북한 여성과 격한 사랑을 나누고 생사의 경계를 수없이 오가는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무심한 듯 하다가도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역할. 윤계상의 최근 출연작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남자 접대부들을 통해 비정한 자본주의의 이면을 들춰낸 '비스티 보이즈'와 사형집행에 참여하게 된 교도관 이야기를 다룬 '집행자' 등 출연작은 어둡고 진중하기만 하다.
예사롭지 않은 역할이기에 쉽지 않은 연기였다. 몸에 진흙을 바른 채 "쓰레기가 떠다니는" 겨울 하천에 들어가기도 하고, 철거 직전 건물의 시멘트 바닥을 뒹굴며 여성과 처절한 키스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이런 힘든 역할이 폼 난다고 생각한다"며 슬쩍 미소 지었다.
아이돌 그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그는 여전히 부담스러워했다. "아무리 연기에 대한 갈망이 있고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해줘도 그건 업계 사람들의 평가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중들이 보기엔 아직도 모자라고 그들의 인식과 계속 싸움을 해야만 한다"고도 했다. "의식적으로 작품성 있거나 연기 변신을 할 수 있는 영화라면 마다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마 3,4년은 더 지나 내가 가수 출신이라는 것을 의식 못하는 대중이 더 많아져야 (나에 대한 편견도) 자연스레 무너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계상은 자신의 연기가 "100점 만점에 40점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2004년 영화 '발레교습소'로 연기를 시작한지 만 7년이 된 배우치곤 인색하기 그지없는 평가다. 그는 "마지막 1%의 대중까지도 안고 가고 싶다. 열등감을 갖고 노력하다 보면 10, 20년 뒤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했다. "가수 활동할 때는 너무 어려서 왜 인기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걸 누리지 못해 후회 막심이죠. 나이가 들고 연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으니 욕심도 나는 듯합니다."
너무 진지해서 여자들이 싫어하겠다고 하자 그는 "그래서 여자친구가 떠났고 지금도 혼자"라고 했다. 최근의 연기 행보 때문일까. "로맨틱 코미디가 몰렸던 예전과 달리 진지한 내용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나 '최고의 사랑'의 대중적 성공을 보면서 그의 마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듯했다.
"어떤 이유도 안 따지고 제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10년을 함께 한 매니저 형이 한숨을 쉬곤 했죠. 돈은 언제 벌 거냐며. '최고의 사랑' 출연은 형의 권유를 처음 받아 들인 거였죠. 대중의 마음을 따르는 것,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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