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KBS 수신료 인상안 표결 처리 여야 합의를 파기했다. 그제 원내 수석대표 협상을 통해 월 2,500원의 수신료를 3,500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전체회의에서 표결처리하기로 합의했다가 하루 만에 뒤집은 것이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한나라당의 일방적 날치기 처리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합의 배경을 설명했으나 당내 비주류와 지지층의 거센 반발을 넘어서지 못했다.
민주당은 당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이뤄진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에서 일정한 권한을 부여한 협상대표들이 어렵사리 이뤄낸 합의를 뒤늦게 뒤집어 버리는 것은 책임 있는 정당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정치 신의를 무너뜨려 정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저하시킨다는 점에서도 폐해가 심각하다. 이런 행태가 반복되니 정치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불신과 환멸이 깊어지는 것이다.
협상대표들간 합의 내용을 당내 추인과정에서 간단하게 뒤집어 버리는 행태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지난주에는 한나라당이 사법개혁특위 소위에서 합의한 대검 중수부 폐지안을 청와대 등이 부정적 입장을 밝히자 당내에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군색한 이유를 들어 파기했다. 5월에는 민주당이 한-EU FTA비준안을 합의 처리키로 한 여야 합의를 깼고, 지난해 9월에는 여야가 서로 지자체 구의회를 폐지하기로 한 합의사항을 슬그머니 없던 일로 하고 말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합의 사항 번복이 빈번한 배경에는 당 내부 지도력 부족과 주류-비주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확고하지 못할 경우 협상대표가 어떤 합의를 해오더라도 계파적 이해에 맞지 않으면 어느 한쪽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오기 마련이다. 협상이란 어차피 절충일 수밖에 없는데 비타협적 원칙을 앞세우는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에 지도부가 흔들리는 경우도 많다.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하려면 당내에서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친 뒤 협상에 나서되 일단 합의가 이뤄지면 다소 불만스럽더라도 합의를 지키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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