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해외 유명 건축가 튀는 설계 아파트/ "그럴듯 하긴 한데 사기엔 좀 거시기하네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해외 유명 건축가 튀는 설계 아파트/ "그럴듯 하긴 한데 사기엔 좀 거시기하네요"

입력
2011.06.23 12:04
0 0

아파트에도 '신토불이(身土不二)'원칙이 적용되는 걸까. 해외 유명 건축가의 인문학적 감수성과 철학이 담긴 설계로 주목 받은 아파트들이 실제 분양시장에서는 잇따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때로는 맛이 없듯이, 외국 거장의 보기 좋은 아파트도 ▦튀는 설계 ▦낮은 환금성 ▦비싼 분양가 때문에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23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이 회사가 지난해 5월 경기 판교에 공급한 타운하우스 '월든힐스'가운데 30%가 미분양 상태다. 국제 현상공모를 통해 핀란드의 페카 헬린, 일본의 야마모토 리켄, 미국의 마크 맥 등 외국 유명 건축가 3명의 각기 다른 설계를 도입했지만 소비자 선택을 받는 데 실패한 것.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용인 동천동 '래미안 동천'도 마찬가지. 인천국제공항과 가나아트센터를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가 맡아 부채꼴 모양의 V자 실내 구조 등 독특한 내부 설계 디자인을 선보였으나, 입주 1년이 넘도록 일부 가구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08년 분양 3.3㎡당 4,325만원에 달하는 초고가 분양가격과 프랑스 유명 건축가 장 누벨의 실내 설계로 화제를 모았던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주상복합도 미분양 물량이 남아 있고, SK건설과 SK D&D가 일본 건축가 이타미 준의 설계를 입혀 판교 운중동에서 분양한 타운하우스 '판교 운중 아펠바움'도 비슷한 상태다. 또 SK건설이 경기 수원시 정자동에서 지역 랜드마크 단지로 선보인 '수원 SK 스카이뷰'도 영국 이스트림사의 튀는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었지만, 이날 현재 전체 3,489가구 중 15% 가량이 미분양이다.

설계도를 얻는 데 최소 수 십억원(LH의 경우 27억원)이 지불된 이들 아파트가 외면 받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한국 특유의 주거문화와 공간 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대체로 수납공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대한민국 40대 주부 입장에서는 넓고 휑한 거실이 강조된 구조나 독특한 실내 구조는 오히려 감점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첫눈엔 그럴듯해 보여도 정작 계약을 앞두고선 공간이 낭비된다며 실제 선택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 건축가가 자주 채택하는 V자 형태 실내 설계는 정방형의 실내 구조에 비해 좁게 느껴진다. 침실과 거실, 주방 등으로 이어지는 동선 주변으로 활용 불가능한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인데, 실내를 조금이라도 더 넓게 쓰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주부 고객의 성향과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독특한 디자인일수록 환금성이 낮다는 점도 외국 건축가 설계의 한계다. 튀는 설계일수록, 그만큼 수요층이 얇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안건축 김종천 대표는 "주택에도 신토불이 주거문화가 통한다"며 "외국에선 찾기 힘든 남향 선호 등과 같은 독특한 주거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려낸 설계는 우리나라 정서와 맞지 않아 시장성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독특한 구조 때문에 그만큼 시공비가 더 들어가 분양가가 덩달아 높아지는 것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이유다. 대형 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계량화하기는 힘들지만 자체 설계를 할 때보다 해외 유명 건축가의 설계를 도입할 경우 사업비가 3~5% 가량 더 투입돼 소비자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파격 설계가 보기에는 좋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이윤을 남기기가 어렵다"며 "최근에는 무분별하게 외국 설계를 받아 오는 경우가 크게 줄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