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에 대한 논란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일부 학생들과 시민단체들은 반값 등록금의 전면적 실시를 요구하면서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권에서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정책적 혼선이 야기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들어주자니 국가 재정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등록금 문제에는 대학과 학생 간의 관계와 더불어 정부와 대학 간, 정부와 학생 간의 문제가 서로 얽혀 있어 더욱 복잡하다.
공공재 역할 대학 선별지원을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으로 지난 10 여 년간 대학의 등록금이 급속히 상승하였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대학들이 웬만큼 부유한 가정이 아니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수준의 등록금을 부과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들이 책정한 등록금과 예산 지출이 적절한지 살펴볼 일이며, 그 책임은 대학뿐만 아니라 대학교육 체제의 감독과 규제를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의 몫이다.
그러나 대학 재정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정부가 직접 재정 지원을 통해 등록금을 대폭 인하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록금을 인하하기 위해 한정된 정부 재정을 투입하려면 그에 합당하는 원칙과 근거가 있어야 한다.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의 근거는 공공성이다. 정부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거나 모든 국민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한다. 외부의 침입과 범죄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방과 치안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정당하다. 또한 공기가 오염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는 것도 깨끗한 공기가 모든 사람이 함께 향유하는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대학 교육이 국방이나 환경과 같은 1차적 공공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학 교육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며 교육이라는 가치를 향유하는 것도 학생 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은 일반적인 공공재와 다른 공공성을 갖고 있다. 대학은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 발전시켜 시민들이 자신과 사회에 대한 정체성을 갖도록 기여하는 한편, 미지의 세계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통해 사회의 진보에 기여한다. 대학은 2차적 공공재를 창출하는 것이다.
또한 대학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가진 고급 인력을 배출하여 사회가 경제적으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하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모든 시민이 누릴 수 있도록 한다. .
다만 전국의 수많은 대학들이 이러한 공공성에 부합하는 역할을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대학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 재정을 투입하려면 공공성의 원칙을 바탕으로 전체 대학 체제와 개별 대학의 교육성과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공성을 충실히 수행하는 대학을 선별해서 재정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역거점 대학도 공공성 지녀
최고의 수월성을 지닌 대학만이 공공성에 충실한 것은 아니다. 지역의 거점 대학으로서 지역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대학들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여한다. 행정복합도시 건설과 같은 지역균형 발전정책의 성공 여부도 각 지역의 교육체제의 발전에 달려있다.
향후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꼭 필요하지만 최근 학생들이 기피하고 있는 자연과학, 공학분야 등에 대한 재정 지원도 공공성에 부합한다. 또한 인구 구조의 고령화에 직면하여 장년층을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평생교육 기관으로서의 대학도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다. 이들의 지속적인 경제 활동이 우리나라 경제를 활력 있게 유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