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호세 안토니오 바르가스(30·사진) 전 워싱턴포스트(WP) 기자가 자신이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바르가스는 23일(현지시간)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20년 가까이 불법 체류자 신분을 감춘 채 살아온 사연을 털어놓았다.
필리핀 출신인 바르가스가 할아버지가 살고 있던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간 것은 열두 살 때인 1992년이었다. 4년 뒤 운전면허를 신청하러 갔다가 영주권을 내밀었는데 면허기관 직원이 가짜라며 퇴짜를 놓으면서 자신이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는 "(필리핀) 악센트부터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나 자신이 미국인이 아니라고 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던 샌프란시스코대를 졸업한 뒤 지역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인턴기자를 시작으로 필라델피아 데일리뉴스를 거쳐 WP에 자리잡은 그는 백악관 만찬을 비롯해 워싱턴의 각종 행사를 취재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그가 2006년 작성한 워싱턴의 에이즈 확산에 관한 시리즈 기사는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제작될 정도로 반향이 컸고 지난해에는 페이스북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의 인터뷰 기사도 썼다. 그는 언론계에 들어갈 때 오리건주 운전면허증을 제시하면서 합법 체류자 신분인 것처럼 위장했다.
그러나 비밀을 감춘 삶을 견디다 못한 그는 사내 멘토인 피터 펄 WP 교육 담당 디렉터에게 자백했지만 그가 회사를 떠나기 전까지 불법 체류자란 사실은 비밀에 부쳐졌다. 최근까지 허핑턴포스트 수석에디터로 일한 그는 워싱턴주 면허증을 따 5년 간 '거짓 삶'을 더 이어갈 수 있었지만 스스로 그만 두었다. 대신 16세 이전에 미국에 정착해 고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들어가거나 군대에 입대하는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불법 체류자라도 영주권 신청자격을 가질 수 있는 일명 드림법이 의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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