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노동조합법이 13년 간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이제 와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복수노조 폐지를 주장하고, 야당과 양대 노총은 창구 단일화와 타임오프제 폐지를 위한 노동법 재개정을 발의했다. 노동법 재개정은 그 동안 우여곡절을 거치며 노사정이 이룩한 노사관계 선진화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천명한 결사의 자유는 근로자가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노동단체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수노조는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아니면 제 3의 노동조합이든 근로자에게 근본적인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결사의 자유는 기존 노조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노조의 조합원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만든 원칙도 아니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노동법 재개정 추진은 정말 근로자에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건지 알 수 없다.
정치인들은 표심 계산에 연연하지 말고 합리적 원칙을 좇아야 한다. 원래의 노동법 개정 취지에 적합하게 근로자의 자유선택권을 보장하는 복수노조법의 실행과 그 부작용을 완화하는 연착륙 수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복수노조가 7월부터 시행될 경우 일각에서 노사관계가 일시적인 혼란을 겪을 것을 걱정하고 있다. 물론 노사관계가 협조적이고 건강한 사업장은 복수노조로 인한 혼란을 구태여 걱정할 이유는 없겠으나, 이러한 주장은 몇 가지 이유에서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우선 한국은 노사관계 후진국이면서도 2인 이상이면 누구나 노조를 결성할 수 있어 비교적 노조 결성이 자유롭다. 미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노조가 대표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근로자 과반수 찬성을 얻거나 전체 종업원이 참여하는 노사협의회의 지지를 획득해야만 한다.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소수 노조의 난립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수 노조의 난립에 따른 노사관계 불안정이 일시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 3노총의 출범을 앞두고 있고, 기존 노총에서 독립한 노조의 수가 사상 최대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소수 노조 간의 경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소수 노조의 난립은 노동조합 자체에 좋을 것이 없다. 따라서 많은 소수 노조보다는 근로자를 진정 대표할 수 있는 노조의 조직화를 촉진할 적절한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복수노조로 인한 혼란을 완화하기 위해서 교섭 창구 단일화는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창구 단일화가 일부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제한한다는 비판도 있으나 현행 노동법이 교섭대표권을 가진 노조의 공정대표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소수 노조의 경우라도 비례대표제로 교섭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어 있는 등 어느 정도의 보조장치를 두고 있는 점은 인정되어야 한다.
또한 최근 프랑스의 노동법 개정에서 볼 수 있듯이 소수 노조의 교섭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려는 움직임은 교섭권을 인정하면서도 노사관계 안정에 기여하려는 목적이 크다. 미국 발 경제공황을 슬기롭게 극복한 한국 경제가 다시금 노동법 재개정이라는 소모적 논쟁을 하기 보다는 원래의 법 개정 취지를 살리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노사관계 불안정 요소를 극복하는 대책 마련에 더욱 힘써야 할 때이다.
양동훈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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