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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쌍용차 남매'의 눈물은 흐른다/ 17세 현우·14세 지현이의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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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쌍용차 남매'의 눈물은 흐른다/ 17세 현우·14세 지현이의 그 후

입력
2011.06.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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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남매'라 불리던 아이들이 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 사태로 엄마와 아빠를 연달아 잃은 남매. 남편이 무급휴직자가 된 충격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엄마가 지난해 4월 아파트에서 투신했고, 일용직을 전전하던 아빠는 2월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현우(17ㆍ가명)와 지현(14ㆍ가명) 남매가 아빠마저 보낸 지 100일이 넘었다. 남매는 현재 할아버지가 있는 충남 홍성군에서 생활하고 있다. 기자가 오빠 현우를 만난 것은 지난 4일.

180㎝가 넘는 키에 건장한 체격. 수줍은 기색이 역력한 현우는 또래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며칠 전 인터넷에서 맥주를 마시고 구두약 냄새를 맡으면 죽을 수 있다는 글을 보고, 맥주를 사다 마셨다"는 얘기를 털어놨다. 한창 예민할 나이, 부모를 동시에 잃은 충격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쌍용차 파업은 남부럽지 않게 화목했던 현우네 일상을 뒤흔들었다. "초등학교 때 아빠가 견학시켜준 공장이 파업 현장이 됐어요. TV에서 보던 노동자들과 경찰이 싸우는 장면은 연출인 줄만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참담했어요." 엄마는 자주 파업 현장에 갔다. 그런 날이면 엄마와 아빠는 어김없이 술에 취해 울었다.

엄마는 힘겨운 싸움을 못 버티고 1년 만에 목숨을 끊었다. 그 후 현우는 충동적으로 학교에서 나와 옥상에 올라가거나 문구용 칼로 손목을 긋기도 했다. 정신과에 입원했지만 퇴원하면 나쁜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지현이는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

그러자 평소 무뚝뚝하던 아빠가 변했다. 새벽같이 밥상을 차렸다. 등하굣길을 함께하면서 "오늘도 즐겁게 지내기!"하며 기운을 불어넣었다. 아빠마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을 때 현우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나. 아빠 장례식이 끝나면 죽어야겠단 생각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자해 같은 행동 때문에 아빠가 잘못된 건 아닌지 죄책감도 많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오빠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시민들의 도움도 컸다. 대표적인 인물이 가수 박혜경씨. 남매의 사연을 접한 박씨는 평생 후원자를 자처했고, 한 달에 한 번씩 이들을 만났다. 지난 달에는 현우네 학교 체육대회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쌀을 부쳐준 은인도 있었다. 현우는 "고마운 손길들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든 것 같다"면서 "이젠 수업 중간에 나오지 않는다. 최근에는 지역 고등학생 축구대회에서 선수로도 활약했다"며 웃었다.

현우는 사회복지사를 꿈꾼다. 저처럼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부모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첫 발을 내딛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쌍용차 파업 이후 저 같은 애들이 많이 생겼잖아요. 저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그들도 힘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희망을 말하던 아이가, 지난 12일 동생과 다시 정신과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 자살을 기도했다는 얘기를 듣고 박혜경씨가 더 큰 사고를 우려해 조치를 취한 것이다. 네 식구의 행복을 앗아간 회사만 생각하면 아직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던 그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사실 '쌍용차 남매'는 이들 만이 아니었다. 한국일보가 이달 쌍용차 해고 노동자 103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한 결과, 69.9%(72명)가 해고 뒤 '자녀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답했다. 우울증과 폭력성의 증가가 변화의 시작이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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