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초기만 해도 밀월 관계가 지나치다 싶었는데, 요즘은 뭐 하나 뜻을 같이 하는 게 없다. 재계는 연일 정치권과 정부를 향해 불만의 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양측이 서로 완전히 등을 돌린 상황에서 어떤 사안도 접점을 찾기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재계가 최근 정치권과 첨예하게 맞붙은 사안은 감세 철회와 반값 등록금. MB노믹스의 큰 줄기를 이루는 감세 정책을 두고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내에서도 "더 이상 추가 감세는 어렵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면서 재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취임 후 내내 침묵하던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21일 "앞으로 법인세 인하를 통해 투자 재원을 마련하고 일자리 창출을 할지 말지 그분들(한나라당 등 정치권)이 선택하면 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데 이어,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23일 "감세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감세 철회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의 주도로 가속을 내고 있는 반값 등록금 정책을 두고도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허 회장은 "면밀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일축했고, 손 회장은 "사회복지제도가 잘 발달된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드문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런 첨예한 입장 차이는 재벌 총수의 국회 출석 갈등으로 번지면서 전면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국회 지식경제위는 29일 예정된 대ㆍ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공청회에 허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장을 모두 출석시키기로 했고, 국회 환경노동위는 한진중공업 노사 갈등과 관련해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29일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재계는 "공청회나 청문회에 재계 총수가 출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끝까지 버틸 태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성명을 통해 "정치권의 청문회 출석 요구는 정치권 포퓰리즘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민간영역에 대한 정치권의 무분별한 개입을 초래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재계와 정부의 대립각도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양측의 관계는 3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이른바 '낙제점 발언'이후 급격히 얼어붙은 상태. 이후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연기금 주주권 강화 발언과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정부의 과세 방침 등으로 양측의 대립은 더더욱 첨예해졌다.
정부의 물가억제 정책도 재계 이해와는 크게 상충된다. 통신비 인하를 놓고 티격태격하더니 최근엔 기름값 할인 연장을 두고 불협화음을 노출하고 있다. 정부는 기름값 100원 인하가 끝나는 7월6일 이후 연착륙 방안을 놓고 정유사들을 향해 '자발적인 할인 연장' 등을 압박하고 있고, 정유사들은 "더 이상은 할인이 불가능하다"며 맞서고 있다. 심지어 GS칼텍스 오너인 허 회장은 "그 정도 고통을 분담했으면 충분한 것 아니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을 두고도 양측의 인식 차이는 확연하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대기업이 MRO 사업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이 다 죽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지만, 재계는 "계열사를 상대로 한 안정적인 자재 공급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주도하는 초과이익공유제나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에 대해서도 재계의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정 위원장이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재계는 좀처럼 수긍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전경련은 레미콘, 두부, 금형 등 업종 하나하나를 들고 나오며 중소기업적합업종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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