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축제가 한창인 캠퍼스 안에서 불의의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자 한모(23)씨는 차에 치여 3,4m 가량 튕겨져 나갔고 의식마저 잃었다. 친구들이 재빨리 119에 연락해 한씨를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한씨는 자동차 범퍼에 부딪힌 골반과 여기에 연결된 넓적다리뼈 위쪽 엉덩이관절이 부러졌다. 의료진은 곧바로 한씨의 부러진 골반과 넓적다리뼈를 맞추고 5개의 금속판으로 골절 부위를 잇는 수술을 시행했다. 7시간에 걸친 큰 수술이었지만 한씨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수술 사흘째부터 일반병실에서 등받이를 대고 앉을 수 있었고, 재활치료 후 한 달 만에 스스로 걷게 됐다. 병원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처 덕분이었다. 수술을 주도한 강남세브란스병원 골절클리닉 팀장 양규현 정형외과 교수에게 골반골절 치료법을 알아보았다.
골반골절, 빠른 진단과 정확한 고정술이 목숨 살려
골반골절은 전체 골절의 3~4%를 차지하며, 대부분 교통사고나 추락으로 발생한다. 무거운 물체에 맞거나 심한 외부 충격으로 생기기도 한다.
골반은 대장과 자궁, 방광을 비롯한 장기를 보호하는 그릇 역할을 하며, 다리로 체중을 전달한다. 따라서 골반이 골절되면 골반뼈가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조직과 장기가 크게 손상돼 배뇨ㆍ배변장애, 신경 손상, 성생활 장애, 골반부 동통, 허리통증이 생기거나 좌우 다리 길이가 달라진다. 해면질골 구조의 골반뼈와 뼈 주위를 지나는 크고 작은 혈관이 터져 출혈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따라서 골반골절이 생기면 신속하고 정확히 진단해 부러진 골반뼈를 맞춰 고정하는 시술을 시행해야 한다. 예전에는 침상에 그냥 누워 있도록 하는 보존적 치료에 머물렀으나 요즘 CT와 혈관촬영술로 골절 부위를 정확히 관찰하고 체내외 골 고정기구를 이용하므로 치료 성과가 훨씬 좋아졌다. 하지만 골반골절은 다른 부위까지 다치는 다발성 손상인 경우가 많고, 골반은 해부학적으로 매우 복잡해 수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전문의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양 교수는 1991년 프랑스 파리5대학에서 연수할 때 이 분야 최고 권위자인 에밀 레투넬 박사를 만나 골반골절 치료법에 천착했다. 레투넬 박사는 세계 최초로 골반골과 비구골절의 개념을 세우고 분류와 치료법 등을 확립한 세계적 명의다. 양 교수는 금속판과 금속정을 개발해 복잡한 골반골절과 팔다리골절 치료에 이용하는 등 우리나라 골반골절 치료 분야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심각한 골반골절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골반골절은 외부의 큰 충격을 받았을 때 발생하므로 주요 장기가 손상되고 골반 주변 혈관이 파열돼 출혈도 많이 생긴다. 따라서 여러 임상과가 협진을 통해 처음부터 적극 치료해야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이 때문에 흉부외과와 외과, 정형외과 등 여러 의료진이 함께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골반골절일 때에는 파열된 혈관을 봉합하고 손상된 주요 장기를 수술한 뒤 정형외과에서 부러진 골반뼈 조각을 제자리에 맞추고 튼튼히 고정하는 '관혈적 정복술'과 '내고정술'을 시행한다."
-골반골절이라면 반드시 수술해야 하나.
"골반골절이라고 반드시 수술할 필요는 없다. 2006년부터 5년 간 강남세브란스 응급진료센터를 찾은 골반골절 환자 1,450여명 중 응급수술을 받은 사람은 158명에 불과했다. 골반골에 금만 간 정도라면 침대에서 안정을 취하거나, 견인치료 등 물리적 요법만으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다만 골반골절이 심각해 골반뼈가 불안정하거나, 엉덩이관절이 부러졌다면 출혈이 심해 쇼크에 빠질 수 있으므로 부러진 뼈를 맞추고 고정해 출혈을 줄여야 한다."
-골반골절은 외부의 큰 충격을 받았을 때만 생기나.
"아니다. 가벼운 충격에도 골반골절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골다공증 환자는 골량이 줄고 골질이 변해 외부로부터 가벼운 충격을 받거나 낙상으로도 골반이 부러질 수 있다. 따라서 나이가 많은 사람은 평소 적절한 운동과 식습관 조절을 통해 뼈를 튼튼히 관리해야 한다."
-골반골절 시 대처법과 이송 시 주의할 점은.
"우선 환자가 의식이 있는지, 숨을 쉬는지 확인한 뒤 최대한 빨리 119 등 전문 응급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간혹 급한 마음에 환자를 등에 업거나 두 팔로 안고 뛰어 오기도 하는데, 이런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에 119 등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면 딱딱한 재질로 된 들것에 환자를 단단히 고정하고, 눌리는 신체 부위에 패드를 받쳐 충격을 줄여야 한다. 외상환자를 옮길 때 기억해야 할 제1원칙은 흔들림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지식이 있다면 환자 골반부를 침대 시트와 골반 밴드 등으로 고정해 벌어진 골반을 닫아주고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골반골절을 막을 방법은.
"최근 골다공증에 의한 골반골절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 정기검진하고 골고루 영양을 섭취해 골다공증 위험인자를 줄여야 한다. 매일 30분 정도 햇볕 아래에서 바깥활동을 통해 몸 안에 칼슘 흡수를 돕는 비타민D가 많이 생성되도록 하는 것도 좋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흡연, 음주는 가급적 삼가야 한다. 외상 등으로 골반골절이 생겨도 대부분 보존적 치료로 치료할 수 있으므로 문제가 생기면 즉시 병원을 찾아 전문의에게 진료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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