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현리 뒷산에 아름다운 계곡, 울산의 운흥동천(雲興洞天)이 숨어있다. 운흥(雲興)이란 말은 그곳에 한때 번창했던 운흥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운흥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전해지는 절인데 지금은 이름과 빈 절터, 부도 몇 기만 전하고 있을 뿐이다.
동천(洞天)은 지리산 화개동천, 강화도 함허동천이 보여주듯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가 좋은 곳을 말한다. 그런 운흥동천에는 마치 하늘 끝에서 보내주듯 사시사철 백옥의 물이 흘러온다. 그 물길 따라 때죽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하얀 방울 같은 꽃들이 매달려 필 때 꽃향기 또한 정신을 잃을 듯 아득하다.
우리는 나무껍질이 검어 때가 많은 것처럼 보여 때죽나무라 부르지만 외국에서는 Snowbell이라 부른다. 같은 나무와 꽃을 두고 단점을 보는 동양의 시각과 장점을 보는 서양의 명명법이 달라 해마다 꽃과 향기 선물하는 때죽나무에게 미안하다. 운흥동천 아래 서 있어도 물을 따라 흘러내려오는 향기에 때죽나무 꽃 피는 것을 안다.
꽃잎 흘러오는 것에 꽃 지는 것을 안다. 어젯밤 큰 비에도 꽃 잎 몇 장만 흘러오는 것을 보니 지금은 가지마다 또르르 열매가 맺히고 있겠다. 세상에 인연 아닌 것이 없다는데 그 열매 익는 가을, 마치 스님들이 떼 지어 모여 있는 것 같다고도 한다. 옛 운흥사 스님들 모두 그 열매 속에 숨은 것처럼.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