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식탁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국민반찬’ 두부. 이 두부가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의 바로미터로 떠올랐다.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두부만은 놓치지 않겠다고 거센 힘겨루기를 벌이는 형국이다.
정부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앞두고 중소기업들이 두부를 포함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자 대기업을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마침내 22일 “두부만은 안된다”며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전경련은 이날 ‘주요 품목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타당성 분석’ 보고서를 통해 “대기업의 두부시장 참여로 생긴 긍정적 효과가 크기 때문에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두부를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 두부산업을 영위할 경우 ▦위생수준이 높아지고 ▦근로자 평균 임금도 상승하며 ▦포장ㆍ대용식 두부 등 다양한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고 ▦동남아 등 판로를 개척해 두부를 수출산업으로 키울 수도 있으며 ▦자체 경쟁으로 독과점 우려가 오히려 낮아진다는 등 그 이유를 다섯 가지나 조목조목 제시했다.
그러자 두부제조업체들의 모임인 한국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는 “유치한 발상”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대기업이 브랜드만 가지고 위생 운운하는 건 중소기업에 대한 비하”라거나 “생산량의 70%를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중기에서 납품 받는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파란만장한 역사
두부가 논란의 중심에 선 건 우선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장규모는 4,700억원 정도지만 소비자가 일상생활에서 거의 매일 접하는 식품이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도는 그 어느 품목보다도 클 수 밖에 없다.
사실 10년전 만해도 두부는 이렇게 싸울 품목이 아니었다. ‘두부장수’란 친숙한 말에서도 느껴지듯, 재래시장 아니면 동네 리어카에서도 흔히 살 수 있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가 폐지되기 시작한 2004년 8월을 전후로 시장상황은 급변했다. CJ제일제당과 대상NFN 등 대기업들이 포장 두부시장에 잇따라 진출하면서, 아울러 ‘웰빙’ ‘위생’을 따지기 시작한 소비자들의 기호변화 속에서 두부 시장은 대기업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어갔다. 한 때 2,500개가 넘던 중소기업들은 OEM에 따른 하청업체로 지위가 변하거나, 아니면 재래시장 위주의 비포장두부(판두부)시장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와중에 문을 닫은 중소두부제조 업체는 900개가 넘는다.
풀무원 공방
지금은 대기업이지만 1984년 직원 10명으로 출발했던 풀무원식품의 성공 신화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대기업측에선 중소기업들에게 대기업 탓만 하지 말고 ‘풀무원’처럼 되라고 요구한다. 두부를 생산하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혁신에 힘써온 풀무원의 성장 과정에서 배울 생각은 안하고 편한 길만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측은 대기업들이 풀무원 사례를 호도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풀무원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자기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기업 진입을 봉쇄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동반성장위원회 관계자는 “이미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대기업에게 사업을 접으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1,600여 중소기업의 요구를 묵살할 수도 없어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일단은 몇몇 대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하는 현실에 대해 일정한 제한을 두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지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2%였지만, 두부값 상승률은 무려 19.2%에 달했다. 몇몇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높아지는 것을 방치할 경우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는 ‘시장 지배력 가설’이 어느 정도는 확인됐다는 것.
다만 이 관계자는 “무작정 대기업을 내쫓는다고 해서 중소기업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면서 “어떤 게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지, 이를 위한 법적ㆍ제도적 장치는 갖춰져 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부를 포함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8월말부터 순차적으로 선정될 예정이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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