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로 휘청거리는 노대륙, 유럽은 요즘 고령사회 복지제도의 핵심인 연금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럽은 진작 공적연금(1층)-퇴직연금(2층)-개인연금(3층)의 체계를 갖추며 '3층 연금제도 시스템'을 확립한 모범 사례. 그러나 한국보다 앞서 직면한 고령화와 재정위기 때문에 공적연금 여력이 줄어 들면서, 퇴직ㆍ개인연금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통해 '연금 피라미드'의 2층과 3층을 두텁게 쌓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국은 1942년 내놓은 비버리지 보고서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원칙을 천명하며 사회보장의 원조국(元祖國)으로 자리잡았으나, 이후 지속적 연금개혁을 통해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8.7%)의 절반에 불과한 31%까지 낮췄다. 게다가 고물가와 연금수지 악화가 이어지면서 1ㆍ2층 연금만으로 노후를 준비하기에 부족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런던의 전형적 중산계층에 속한 마크 베이컨(52ㆍ회계사)씨의 생각도 그렇다. 베이컨씨는 "은퇴 후 지금 소득의 50%를 받을 수 있어도 만족하지만, 국가에서 제공하는 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현재 소득의 10%를 은퇴자금으로 따로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도 공적연금 기능 약화에 대처하기 위한 묘수를 짜내고 있다. 20.4%에 이르는 청년실업률에도 불구, 연금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 10월부터 65세 정년퇴직 규정을 폐지하기로 했다. 현재 남자 64세, 여자 60세인 연금수급 연령을 2024년 66세, 2034년 67세, 2044년 68세로 각각 상향할 계획을 갖고 있다.
정책 지원으로는 개인연금에 대한 세제혜택이 대표적이다. 소득세를 부과할 때 연간 납입액 1만 5,000파운드(2,600만원)까지를 소득에서 공제하고 나중에 은퇴 후 연금소득에서 세금을 내도록 과세를 미뤄주는 식이다. 어차피 내는 돈이지만 최고 40% 소득 누진세율을 감안하면 매우 큰 혜택이 된다. 예컨대 현재 30% 세율로 부담해야 할 것을 은퇴 후 소득이 줄었을 때 15%의 세율로 납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위스도 비슷한 형태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스위스 금융지주사인 취리히그룹의 이본 랭 케터러 보험총괄 대표이사는 "근로자는 연간 개인연금 납입액 중 6,682스위스프랑(853만원), 자영업자는 3만 3,408스위스프랑(4,266만원)을 소득에서 공제해 준다"고 소개했다. 스코르 재보험의 안드레아스 무쉬크 마케팅 상무도 "스위스 국민의 개인연금 가입률이 85%에 이를 정도로 높은 것은 세금혜택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조성된 자금을 주택구입 등 다른 곳에 쓸 수도 있어 활용도가 크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개인연금 납입액 중 연간 4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것이 전부.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개인연금 세제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정부 일각에서 개인연금 활성화 방안이 논의되고는 있지만,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논의에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런던ㆍ취리히=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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