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삐끗하면 나라는 순식간에 흔들린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의 이례적인 정치권 포퓰리즘 비판은 '반값 등록금' 논란 과정에서 정치권이 스스로 정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했고, 그것이 어떻게 정책에 대한 이반(離反)을 초래하는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허 회장은 엊그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심하고 정치권을 겨냥했다. 그는 반값 등록금을 예로 들며 "포퓰리즘 하는 사람들이 잘 생각하고 내놓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등록금 반값 하면 대기업도 좋다. 종업원(자녀의) 등록금을 다 대주는데, 그렇다고 찬성해서야 되겠나"고 개탄했다.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재원에 대한 숙고 없이 당장 들끓는 여론에 영합하기 바쁜 정치권의 행태를 겨냥한 것이다.
허 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주도하는 초과이익공유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 품목 지정 같은 기업 동반성장정책이나,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된 법인세 감세 철회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이견과 반대입장을 냈다. 특히 법인세에 대해서는 "(감세를 통해) 재원이 생기면 (기업은) 투자와 고용 창출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고 세계적 추세"라며 "감세 철회에 대해서는 반대"라는 입장을 못박았다.
정치권이 재계의 입장을 대표한 허 회장의 주장을 고깝게만 본다면 반박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당장 거친 작명(作名)에도 불구하고 초과이익공유제의 취지는 살릴 만하다는 입장도 많다. 또 감세가 돼야 투자와 고용 창출을 많이 할 수 있다는 듯한 주장 역시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허 회장의 주장에서 정작 곱씹어야 할 대목은 반값 등록금에 대한 정치권의 경거망동이 동반성장이나 조세 같은 협력 가능한 정책에 대해서까지 재계의 노골적 이반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재계를 아우르지 못하고는 어떤 성공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재계를 설득하는 정치권의 카드는 명분뿐이다. 지금 정치권은 그 명분을 스스로 훼손한 점을 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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