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은 바 전혀 없는데요. 혼자 장사하는데 어떻게 일일이 챙겨요."
19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이동통신사 판매점. 사장 A씨의 반응은 냉랭했다. 주말 대목, 눈빛은 지나가는 손님을 놓칠까 날카롭고, 손은 밀린 가입신청서를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가입신청서를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우리도 누가 어떤 모델을 사갔는지 판매 장부를 써야 할 것 아니냐"고 받아 친다.
판매점은 이동통신사가 아닌 대리점과 개별적으로 계약해 휴대폰을 소비자에 판매하는 곳. 대리점이 1차 소매점이라면, 판매점은 2차 소매점이다. 이달 초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놓은 개인정보 관리지침에 따라, 판매점은 소비자의 가입 신청서를 스캔해서 이동통신사로 보내주고 원본은 소비자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문제는 판매점들이 가입신청서 내용을 삭제 하지 않고 그대로 컴퓨터에 저장해 놓는다는 것. 가입신청서 원본을 아예 소비자에게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방통위는 최근 서울ㆍ인천 지역 판매점을 점검한 결과 60%가 이 같은 행태를 보였다며 이동통신사 판매점의 개인정보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방통위 지침이 내려간 뒤에도 현장에선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 판매점이 밀집해 있는 용산 전자상가를 찾아 일일이 물었지만, 판매점주들은 "이번에는 또 무슨 제도가 달라졌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B판매점 사장은 "아직 많은 판매점에서 가입신청서를 쌓아놓고 있고 솔직히 나도 서랍에 개인 신상 정보가 적힌 가입신청서 사본 묶음이 있다"며 안쪽의 한 수납장을 가리킨다.
원래는 보관금지가 원칙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다 보니 통신당국은 이동통신사에게 "분기마다 판매점으로부터 가입신청서를 직접 수거하라"고 행정지도를 해왔다. 하지만 역시 지켜지지 않자, 이번에 "매주 2~3회씩 회수하라"고 지시했지만 일선에선 감감무소식이다. B사장은 "가입 신청서가 쌓이고 쌓여 수거해 달라고 이통사에 전화를 해도 나올까 말까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주 2,3회 수거가 가능이나 하겠나"고 반문했다.
방치된 개인정보는 판매점이 폐업할 때가 더 큰 문제다. 판매점 사업자는 폐업신고만 하면 그 뿐, 보관해둔 개인정보 관련 서류나 데이터를 폐기해야 할 의무가 없다. C 판매점 사장은 "대리점은 폐업할 때 돈 얘기만 하지 가입신청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회수하느냐 등은 물어보지도 않는다"며 "사업 접는 사람이 가입 신청서 챙기는 것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국의 이동통신 판매점은 1만5,000~2만여개로, 창업과 폐업을 수시로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선거 철마다 판매점의 개인정보 매매 의혹이 불거지지만 음지에서 이뤄지는 데다 실태 파악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동통신사는 판매점 개인정보 관리 문제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에서 얘기를 듣긴 들었는데 사실상 판매점을 관리할 권한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대리점이 개별적으로 계약하기 때문에 대리점 관리 하에 있다는 것. 하지만 대리점이 자체적으로 판매점의 개인정보 데이터까지 관리하기는 역부족이어서, 사실상 개인정보관리는 공백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통사의 묻지마 단속도 등장했다. 판매점에 따르면 이통사가 고객에게 무작위로 전화해 가입신청서 돌려받았느냐고 물었을 때 '아니다' 또는 '모르겠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판매점에게 무조건 벌금을 부과한다.
판매점들은 판매점 대로 억울하다는 입장. 종로의 한 판매점 사장은 "아이폰 한 대 팔면 3만원 남는데 영문도 모르고 벌금 30만원 물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매번 개인정보 유출 주범으로 판매점이 타박 당하느니 제대로 실태 조사하고 확실한 방법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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