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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 가족 뒷바라지하는 전효택 상사/ "아내·딸 살리고 싶은데" 가장은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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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 가족 뒷바라지하는 전효택 상사/ "아내·딸 살리고 싶은데" 가장은 웁니다

입력
2011.06.2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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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야… 미안해…."

20일 부산대 병원 장례식장. 전효택(35) 상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두 손으로 딸의 영정을 보듬고 또 보듬었다. 이제 갓 돌을 지나 아장아장 걸어다닐 내 새끼. 하지만 넓은 세상으로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한 줌의 재로 변해 있었다. "진주야, 못난 아비를 용서해다오. 널 대신해서 엄마와 언니는 꼭 지켜줄게."

전 상사는 그렇게 15개월 된 막내 딸을 먼저 보냈다. 병명은 급성 간질성 폐질환. 폐가 딱딱하게 굳는 증상으로 아직 치료방법이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아내 백현정(31)씨와 큰 딸 주영(5)이도 같은 병으로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다. 가족간 집단 발병한 첫 사례다.

병마는 막내에게 먼저 찾아왔다. 3월에 돌잔치를 하는데 아이가 잘 웃지 않고 자꾸 보챘다. 전 상사는 "몸에 열이 없어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뒤늦게 병원에 데려가니 폐렴이었죠"라고 말했다.

진주를 근처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5월에 아내의 친정이 있는 부산의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 때 간병을 하던 아내가 쓰러졌다. 갑작스런 호흡곤란. 6일 뒤 큰 딸도 같은 증상으로 입원했다. "눈앞이 캄캄했어요. 전방부대에 근무하느라 멀리 가족과 떨어져 있던 제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죠."

아내 백씨는 8일 서울로 이송됐다가 다행히 15일 폐 이식수술을 받았다. 이어 큰 딸도 병세가 악화돼 11일 아내와 같은 병원의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하지만 너무 어린데다 이식할 폐를 찾기 어려워 약물 투여마저 중단한 채 의료진이 상황만 지켜보고 있는 처지다. 그 사이 막내 진주가 세상을 떠났다.

홀로 진주의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올라온 날, 아내는 기도에 달았던 호흡기를 떼냈다. 오랫동안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느라 둘째의 소식을 모르는 아내다. 아직 말을 하기 버거운 아내를 위해 전 상사는 보드판을 내밀었다.

아내는 힘겹게 펜을 쥐더니 이렇게 적었다. "우리 아가, 진주는 잘 있지요. 주영이도 보고 싶은데." 전 상사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럼 잘 있지, 그러니까 당신도 어서 일어나야지."

전 상사에게 당장 급한 것은 돈이다. 아내와 큰 딸의 병원비가 벌써 1억 원이 훌쩍 넘었다. 공식적인 희귀성 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해 보험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전 상사가 휴가를 내고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액수다. 딱한 사정이 알려지자 전 상사가 몸담고 있는 육군28사단에서 전 장병이 모금운동을 벌여 성금 1,000만원을 전달했고 육군도 자체적으로 모금활동을 전개할 계획이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전 상사는 "아내에게 막내 소식을 전하는 것도 걱정"이라며 "어떻게든 역경을 이겨내 가장의 도리를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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