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 프리미엄'이라는 용어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와 독특한 아이디어로 현대캐피탈의 성장을 이끌어 온 정태영(51) 사장의 평판에 금이 갈 위기가 닥쳤다. 올 4월 175만명의 고객정보가 유출된 해킹 사고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추궁이 임박했기 때문. 그 수위가 정해지지 않았으나 당국의 징계가 확실시되는데다, 업계에서도 "카리스마가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상 징계수위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21일 "현대캐피탈에 대한 특별검사에서 전자금융거래법과 관련 내규를 위반한 사실을 적발, 징계 대상자를 추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늦어도 8월중 결론이 날 전망인데 175만명에 달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된 만큼 현대캐피탈에 대해선 기관경고 조치가 검토되고 있다.
업계가 관심을 갖는 건 회사 징계가 아니라, 정 사장에 대한 제재 수위다. 금감원에서는 "징계와 관련해 가닥이 잡힌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가장 가벼운 '경고'와 중징계에 해당하는 '직무정지' 사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가능성은 낮지만 '직무정지'결정은 정 사장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2003년 이후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의 경영을 진두 지휘해 온 그로서는 내년 3월 임기만료 후 재선임 기회가 봉쇄된다. 현행법상 직무정지를 받은 자는 퇴임 후 4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선임될 수 없기 때문. 회사 관계자는 "선장 잃은 배에서 선원들이 길을 잃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사실상 그의 후퇴는 곧 사업의 '올스톱'을 의미하고 직원들 또한 패닉상태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회사는 주의적 경고나 문책경고 선에서 마무리기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금감원 내부의 징계수위 논의 과정에서 "사고 발생은 막지 못했지만, 정 사장이 해커와 뒷거래를 하지 않고 곧장 공론화하는 등 신속하고 투명한 대응을 한 것은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다소 자신감 잃어"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이기도 한 정 사장은 2003년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사장으로 선임될 당시만 해도 '재벌가 사위'란 수식어가 줄곧 따라붙었다. 정경진 종로학원 회장의 큰아들이자 서울대와 미국 MIT를 나온 인재이지만, 재벌 총수의 사위란 인식이 더 강렬했던 것.
하지만 그는 남자 모델에게 미니스커트를 입혀 화제가 된 '미니M',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는 CM송(광고용 노래)으로 유명한 '현대카드W' 광고를 비롯해 업계 최초의 초우량고객(VVIP)카드인 '블랙카드' 등을 히트시키며 CEO로서의 위상도 공고히 했다. 이런 노력으로 2001년 설립 당시만 해도 점유율이 1.8%에 불과했던 현대카드는 10년 만에 업계 2위권(13%)으로 우뚝 선 공룡기업이 됐다. 현대캐피탈도 독보적인 업계 1위로 키워냈다.
하지만 감독당국이 낮은 수위의 징계를 내리더라도, 해킹 사건은 정 사장의 이력과 평판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최초'와 '혁신'을 몰고 다닌 그가 해킹사건 이후 다소 자신감을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위터'로 자신의 사생활을 적극 알리고, 사업차 국내외 현장을 다니는 모습은 변함 없지만, 내부 행사나 회의에서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던 모습은 다소 누그러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회사 관계자는 "대외적으로는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지만, 스스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징계 조치 등 법적 책임이 마무리되면, 정 사장이 명예회복 차원에서라도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혁신을 주도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 해킹 사건 일지
- 4월 7일=해커 일당 "(3월에 175만명)고객 정보 빼냈다. 5억원 입금 안 하면 유포하겠다" 협박 이메일. 현대캐피탈 경찰에 신고.
- 4월 8일=현대캐피탈, 범인 유인 위해 1억원 지정 계좌에 입금했으나 검거 실패
- 4월 18일=해커 일당의 국내총책 검거(주범은 해외 도피 중)
- 6월 21일=금융감독원, 현대캐피탈에 대한 특별감사 마무리
- 7~8월=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정 사장 징계 결정(예정)
●정태영 사장
- 1960년 서울 출생
- 1983년 서울대 불문과, 1987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 졸업
- 1987년 현대종합상사 기획실 이사로 현대그룹 합류
- 2000년 현대모비스 전무이사, 2001년 기아자동차 자재본부 본부장
- 2003년 10월~현재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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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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