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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 장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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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 장미원

입력
2011.06.21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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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

아주 오래 전 이곳은 장미의 정원이 있었던 곳. 진홍빛 꽃잎 한 장 들추고 그리로 들어간 여자애는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등(燈)을 켜자 하루살이 떼 새까맣게 눈으로 몰려들고 삽자루를 쥔 사내들은 코를 막고 달아났다. 퍼런 입술 검은 흙을 털어내고 치맛자락을 들추자 너무도 오래 전의 냄새가 천천히 흘러나온다. 까맣게 탄 혓바닥을 한 장 뜯어내고 여자애는 허공의 그네 위에서 발을 구른다. 굳어버린 눈꺼풀 속 숨었던 별들이 흰나비떼처럼 쏟아지고 아득아득 씹히는 새파란 별들, 여자애는 자꾸 발을 구른다. 낡은 주름 스커트가 활짝 펼쳐지며 펄럭이고 베어 문 이빨자국 아직도 남아 있는 별들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찢어진 꽃잎 속으로 들어간다. 오래 전 이곳은 장미의 정원, 꽃잎의 그늘 겹겹마다 사라진 아이들이 숨어있는 곳.

● 신촌에서 두 정거장 지나 백사고지 앞에 내립니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수도탈환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래요. 집으로 돌아가다 문득 이 길을 물들였을 청년들의 피를 떠올리곤 기분이 참 이상해집니다.

시인은 아름다운 이름의 동네에 살았군요. 장미원 앞에서 내려요, 이러면 아무래도 전쟁터 가운데 내리는 것보다 행복한 기분이 들지요.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가 봐요. 아름다운 장미원에도 오래된 시취(尸臭)같이 코를 쥐게 하는 사연들이 있었겠죠. 그 사연들보다 더 오래된 시간을 파보면 별들이 흰나비떼처럼 쏟아지는 환한 시절도 있을 테고… 백사고지라는 이름을 얻기 전엔 이곳도 아득아득 씹히는 새파란 별 같은 이름이었을 거예요. 오늘 아침, 어떤 이름의 정류장에서 내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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