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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17> 쇼브라더스에 입성한 이방인 정창화, 메이저 시스템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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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17> 쇼브라더스에 입성한 이방인 정창화, 메이저 시스템을 배우다

입력
2011.06.2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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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쇼브라더스에 가서 놀랐던 것은 그 규모와 시스템이었다. 쇼브라더스는 당시 아시아 굴지의 영화사였다. 쇼 무비타운이라는 마을에 아파트를 여러 채 지어놓고 배우와 스태프가 살 수 있는 주거환경까지 갖추어 놓고 있었으며 세계 각국에 영화를 배급할 수 있는 1200여개 극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동시 녹음 시설이 있는 스튜디오가 10개에다 명나라, 청나라 등을 배경으로 한 사극부터 현대물까지 모두 촬영할 수 있는 무비타운 내의 대형 오픈 세트가 엄청난 규모로 들어서 있었다. 그런 어마어마한 위용은 감독이 자기 실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쇼브라더스에서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것을 본 나는 '이런 여건이라면 얼마든지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졌고 부푼 기대감을 가득 안고 쇼브라더스에 입성했다.

그런데 쇼브라더스의 홍콩감독들은 '이방인이 하나 나타났다'는 경계심과 질시하는 눈초리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그런 것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낯선 이국, 새로운 환경 속에서 영화감독으로서 성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설 곳이 없었다. '나는 여기에 영화를 만들기 위해 왔다. 영화만 잘 만들자.' 이렇게 생각하며 더욱 영화에만 집중하는 생활을 했다.

나는 승부욕이 강한 감독이다. 더구나 나는 타국에서 온 외인부대 아닌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다. 쇼브라더스 소속 감독들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입사한 첫 날부터 하루 세 시간만 자며 그들이 만든 작품 100여 편을 모두 보며 분석하고 연구하는데 골몰했다. 그렇게 한 달 이상을 보내며 심기일전(心機一轉)하니 잘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지기 싫었고 그들보다 월등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며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했다.

그 고군분투(孤軍奮鬪)의 과정에서 홍콩영화에 대해 식견을 넓혔고 경쟁자이자 동료인 홍콩감독들을 이해하는 깊이도 생겼으니 결과적으로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이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처음에는 굴러 들어온 돌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쇼브라더스엔 좋은 배우들이 많았다. 그러나 내가 월등한 위치에서 앞서 가는 것을 싫어하는 감독들이 견제하고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마음에 둔 배우들을 기용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드세게 날을 세우며 작품으로 승부하리라고 다짐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홍콩감독들은 훌륭한 경쟁자이자 오랜 홍콩 생활의 곁을 지켜준 친구이기도 했다. 생산적인 면에서는 경쟁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상호발전과 견제를 위한 선의의 경쟁은 나 자신을 위한 비옥한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견제하고 경쟁하는 감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별히 나는 호진취안(胡金銓)감독을 매우 좋아했고 그의 작품을 좋아했다. 그의 작품에는 낭만과 시가 흐르고 있었다. 그와 나는 배짱이 맞는 좋은 친구였다. 그런 그가 일찍 세상을 뜬 것이 못내 애석하다. 중국인의 생활상을 알기 위해서 서민들이 살고 있는 주룽(九龍)반도 우범지대의 마약소굴을 찾았을 때가 생각난다. 위험하다고 그가 동행해 주었고 그곳에서 진기하고 맛있는 토속음식을 먹으며 영화와 인생을 논했던 따뜻한 추억이 떠오른다.

어쨌든 외국인으로서 현지감독들의 텃세도 견제도 우정도 모두 영화로 승화시키리라 독하게 마음먹고 영화에 몰입했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영화 촬영에 들어가서 보니 불만스러운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불만스러웠던 것은 영화를 한 작품 만든다면 촬영기사가 그 작품을 끝까지 함께 책임져야 하는데 쇼브라더스 시스템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한 열흘쯤 함께 촬영하던 촬영기사가 나타나지 않고 다른 촬영기사가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황한 나는 '아, 내가 한국 감독이라서 차별 대우를 받고 있구나'하고 오해를 했고, 란란쇼 쇼브라더스 사장한테 쫓아가서 "어떻게 촬영기사를 바꾸느냐.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냐" 하고 따져 물었다. 란란쇼 사장은 "나는 비즈니스맨이다. 내가 그 촬영기사하고 스태프한테 월급을 주는 이상은 놀릴 수 없다"면서 "정 감독이 스튜디오에서 세트를 새로 짓는 동안에 촬영기사를 놀릴 수가 없으니까 다른 작품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그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톤을 누가 맞추느냐? 똑같은 촬영기사만이 톤을 맞추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와서 그걸 맞추느냐?"하고 물러서지 않으니, 란란쇼 왈 "그것은 감독이 촬영기사한테 설명을 해서 맞추게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 한 수 배운 것이 있다. '쇼브라더스 시스템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당시로는 나를 포함한 한국영화계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시스템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감독들도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 나 또한 그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밖에.

쇼브라더스에 가서 느낀 점은 다른 무엇보다도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메이저 시스템이었다. 예를 들면 촬영단계를 세분화해서 치밀하게 작업해나갈 수 있는 회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기획자와 감독, 제작자가 함께 둘러 앉아 시나리오를 놓고 기획회의를 하면 그 시나리오에 대해 서로 진지한 의견 교환이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한 사람이고 한 사람의 머리라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기획회의에서 각자가 의견을 제시하고 거기에 뭔가 허점이 있으면 수정하면서 관객의 입장에서 최종까지 검토하여 과연 이 작품이 극장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할 수 있겠는가 예측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 각 기술 분과 회의에 들어간다. 예를 들어 세트 디자이너회의 때 감독이 "나는 이 장면을 이렇게 가고 싶다"고 말하면 디자이너들이 메모를 해 놓고 감독 뜻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 촬영은 "너무 평면적인 것 보다는 톤이 있는 그림이 돼야겠다. 나는 평면적인 그림을 싫어한다"하면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그림을 지양하고 조명도 그렇게 간다. 소도구라면 미리 "중간에서 칼이 어떻게 부러진다" 이런 얘기를 해 둔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것이 생략되어버리니 현장에서 부러뜨려 촬영하게 되고 감독하고 생각하는 것이 전연 다르게 진행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스태프 회의를 할 때 이미 완성된 콘티뉴이티(촬영 대본)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콘티뉴이티가 완벽하게 되어있으면 그것에 따라 감독이 원하는 대로 주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도구는 감독이 요구한 대로 어느 장면에서 칼이 어떤 식으로 부러져야 하고 그 칼이 상대방 가슴에 어느 정도 꽂혀야 한다든지 또 피는 붉은 색이냐, 검붉은 색이냐 등 세부적인 검토가 가능하다. 검은색에 가까운 피로 시간이 경과했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과 같이 장면구성을 위한 상세한 것 까지 통제 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영화현장에서는 '죽었다'하면 대충 붉은 색깔을 뿌려 놓는다. 콘티뉴이티가 없고 연구를 안 하니 그런 두루뭉술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확실한 콘티뉴어티를 준비한 나는 스텝들에게 "처음에는 이런 색깔이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이미 죽어있는 사람이니까 색깔이 좀 검은색에 가까워져야 한다."하며 구체적인 요구를 할 수 있게 된다.

감독이라는 직업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피곤한 직업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하루 3시간 밖에 못 잔다. 못 잔 시간만큼 이 궁리 저 궁리를 다해서 촬영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했으니 말이다.

배우들과의 회의에서는 "당신은 무슨 역할이야. 책에 나온 것은 이러이러하지만 당신은 뭔가 조금 부족한 연기를 해야 한다. 그러니 그것을 연구 해와라." 이런 얘길 해 줘야 준비가 될 수 있다. 준비 없이 현장에서 바로 "넌 좀 모자란 역할이니 그런 연기해봐라"하면 서로가 난감할 뿐이다. 배우와의 회의에서 사전에 성격 규정을 해 주는 것이다. 여배우 같은 경우 "너는 너무 참신하다. 네 역할은 요염한 역할이다." 등 일일이 지적해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조연급 배우들이 거의 대부분 오버 액션을 하는 편이다. 어느 미국 영화평론가는 한국영화를 혐오스럽다고 혹평 했는데, 이유는 '한국 배우들은 거의 대부분 오버 액션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젖어서 잘 모를 수 있는데 중국 3류 영화를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작회의 때도 주ㆍ조연급 연기자들을 막론하고 "나는 오버 액션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조연이든 주연이든 내면적인 심리 연기를 해라. 관객이 부드럽게 받아들여야지 뭔가 거부감을 갖는다면 그 작품은 실패하는 것이니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연기를 하도록 노력해 봐라"고 요청 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런 식의 사전 회의들이 없었다. 홍콩에서 돌아와 영화사 화풍흥업을 만들면서 메이저 시스템을 받아들여 기존의 허술한 제작여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스태프들에게 준비를 해서 제작회의에 참석하라 했더니 처음에는 왔었지만 그 다음에는 불참, 불러도 역시 불참이었다. 회사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기획단계에서도 한국은 작가가 혼자 매달려서 시나리오를 쓰곤 하는데 이건 극히 위험한 방법이다. 사람의 머리에는 한계가 있다.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부터 감독과 기획자가 함께 매달려야 한다. 그것이 곧 관객이 영화를 보는 눈과 같아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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