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수원서 시각장애 여성 19명 메이크업 콘테스트/ "아름답고픈 여자 마음은 다 똑같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수원서 시각장애 여성 19명 메이크업 콘테스트/ "아름답고픈 여자 마음은 다 똑같죠"

입력
2011.06.20 17:31
0 0

22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20~60대 여성 19명이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아 천천히 무대에 등장했다. 각자의 좌석에 앉은 여성들은 화장품 세트를 열고 화장을 시작했다. 파운데이션을 곱게 바르고 아이라인을 그리는 모습은 여느 여성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특이하게도 거울이 없었다. 선천적이나 후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손의 감각과 경험으로 하는 화장. 동그랗게 뜬 눈은 허공을 응시했지만 손 동작은 능숙했다.

이들은 올해 2회째인 시각장애 여성들의 화장 콘테스트인 '거울도 안보는 여자' 참가자들이다. 천연화장품 제조사인 사회적기업 비앤원에 메이크업 관련 수기를 보내 당선된 후보자들이다. 거울은 볼 수 없지만 여성의 특권인 화장에 도전하는 사연은 다양했다.

김영숙(55)씨는 어느 순간 시력이 약해져 시각장애인이 됐다. 2009년 3월 화장을 한 뒤 모임에 가려는 데 직장에 다니는 김씨의 딸이 "엄마, 그렇게 하고 나가는 거야"라고 말해 박장대소한 적도 있다. 한쪽 눈에만 화장을 한 탓이었다. 처음에는 같이 웃었던 김씨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흘렸다. 놀란 딸도 "엄마 마음도 모르고 심하게 웃어서 미안하다"며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다. 무대에서 사연을 공개한 김씨는 "다시 화장을 고치고 모임에 갔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지금 생각해도 웃지 못할 에피소드"라고 말했다.

최연소 참가자인 이성미(26)씨도 한쪽 눈만 화장을 해 팬더가 됐던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이씨는 예쁘게 화장이 된 것 같아 자신 있게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예쁜가' 하는 흐뭇했던 마음은 친구의 한 마디로 산산조각 났다. "너 누구한테 얻어 맞았어? 눈 주위가 야구선구 같아." 그날을 생각한 듯 이씨는 "눈 화장이 다 번져 팬더가 된 것도 몰랐다"며 "엄청난 연습으로 나아졌지만 요즘도 가끔 쌍꺼풀 위에 아이라인을 그리곤 한다"고 털어놨다.

1997년 교통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최고령 참가자 신양수(69)씨는 "화장은 나에게 중요한 일과"라며 "세상 모든 사람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은 시각장애인이라도 예외일 수 없다"고 했다.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원순호(41)씨는 화장을 "남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정의했다. 배희경(42)씨는 화장을 하지 않는 시각장애 여성들을 향해 "스스로를 위해 화장을 꼭 시작해 보라"고 권유했다.

한편 경기도는 이날 '1㎜의 기적'이란 슬로건으로 각막기증운동을 병행해 100여 명의 안구기증 서약서를 안구기증운동협회에 전달했다. 도 관계자는 "20만여 명에 이르는 국내 시각장애인 중 약 2만명은 각막 이식수술만 받으면 시력을 회복 할 수 있는데 안구 기증이 못 따라줘 평균 이식 대기기간이 6년이나 걸린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