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범신(65)씨에겐 올해가 여러모로 뜻 깊다. 7월이면 막내 아들이 결혼해 자신의 품을 떠나고, 8월에는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한다. 그는 "38년의 아버지 노릇, 25년여의 선생 노릇이 끝난다"고 했다.
마지막 남은 것은 작가 노릇. 1973년 등단 후 39년째 이어온 작가 인생에 온전히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교수직을 그만 두니 사회생활을 정리하는 느낌이 드는데, 현재 맡고 있는 문화재단이사장 등 모든 직책도 정리할 계획"이라는 그는 "강력한 펜을 가진 청년작가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10년 정도 열심히 글을 쓰겠다. 글 쓰다가 순교하는 게 내 소원"이라고 말할 때는 환한 웃음도 지었다.
1990년대 중반 3년여의 절필 기간을 제외하고, 쉼 없는 창작의 에너지를 보여준 그가 이번에 새로 낸 책은 서른 아홉 번째 장편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문예중앙 발행)이다. 그의 이전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도 높은 폭력과 살인 묘사가 두드러지는, 인간 악마성의 난장을 그린 작품이다. 나의>
주인공 '나'는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처럼 타인의 폭력에 위기를 느끼거나 분노에 빠질 때, 부지불식간에 손바닥에서 말굽의 형상이 돋아나 이를 무기로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 그가 대결하는 이는 '샹그리라'란 원룸 빌딩 소유자이자, 도시의 보이지 않는 군주인 이 사장으로 주인공보다 더 지독한 폭력과 악의 화신이다. 불모의 인간들이 모여 사는 샹그리라를 무대로 '나'는 이 사장의 비정한 행각을 목도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되찾고, 자신이 어렸을 때 사랑했던 소녀 여린을 지키기 위해 이 사장과 대결한다.
소설은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괴기성, 섬뜩한 호러 분위기, 미스터리한 구성 등 강렬한 색채로 자본주의 사회 폭력의 무한증식을 숨가쁘게 그려낸다. 박씨는 "얼마 전 모 재벌 회장 친척이 매값을 주고 야구 방망이로 폭행했다는 사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소설의 실마리는 거기서 시작됐다"며 "자본주의 문명 뒤에 은밀히 장전돼 있는 폭력성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안락하고 편리한 시대, 화려한 자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 마음도 병들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서 잇따르는 살인 사건에 대해 박씨는 "소설에서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며 "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언제나 따뜻한 소설을 쓰고 싶은데 세상이 그렇게 만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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