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키운 딸을 너른 부잣집에 시집 보내는 것 같았어요. 정말 기뻤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평생 수집한 청자와 백자 등 도자기를 올 초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안인희(84)씨는 소녀 처럼 활짝 웃었다. 남편의 유품 기증을 두고 "어려운 결정 하셨겠다"는 말에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집안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녀석들을 내보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했다. 오히려 "진작에 기증했더라면 남편한테서 더 사랑 받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후회로 남는다"고도 했다.
안씨가 기증한 도자기들은 남편 민완기(2004년 작고)씨가 결혼 직후였던 1960년부터 모으기 시작해 아내보다 더 애지중지한 물건들이었다. 안씨는 "남편은 여행을 가더라도 그 지역의 골동품 가게를 제일 먼저 찾아가 나를 밖에 세워놓고 도자기를 수집할 정도였다"며 "집으로 들여온 뒤에는 맥주 캔을 들이키며 몇 시간이고 방에 틀어박혀 감상했다"고 회상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민씨는 법무부 법무관을 지낸 뒤 개인 사업가로 활동하면서 도자기에 심취했다. 법조계에서는 수준 높은 도자기 컬렉터로 알려진 인물이다. 안씨가 박물관에 기증한 도자기는 청자 11점, 분청사기 1점, 백자 35점 등 모두 62점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백자까지 다양한 기종이 망라됐다.
옛 도자기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남달랐던 탓에 아내는 물론 자식(2남1녀)들도 아버지의 취미생활을 말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르긴 몰라도 도자기 수집에 적지 않은 돈이 들었을 거에요. 그래도 다른 데에는 돈을 일체 쓰지 않았으니 별 수 없었죠. 오죽했으면 '단벌 신사'라는 말까지 들었겠어요. 다른 덴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폐암으로 세상을 등진 민씨가 입관 때 매고 있던 넥타이도 45년째 사용하던 것이었다.
민씨는 유품과 관련된 유언을 따로 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씨가 기증에 선뜻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이다. "기증품들을 보관하는 박물관 방에 가니 훤하고 넓었습니다. 컴컴한 우리집 골방보다 낫겠다 싶었죠. 생각할 때마다 기증 참 잘했다 싶어요."
기증엔 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안씨의 또 다른 욕심도 작용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남편이 사랑한 도자기들을 위하는 길 아니겠어요?"
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기증받은 물건들은 한국 도자기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수집품들로 보존 가치가 높다"며 "박물관내 기증관과 상설전시관 등에서 다음달 5일부터 일반인들을 상대로 선을 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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