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경전은 모두 ‘여시아문(如是我聞) -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 ‘나’는 석가모니부처님의 10대 제자의 한 명인 아난다이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4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제자가 되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전 20여 년 간 시자(侍者)를 맡아 가까이서 모시면서 그가 출가하기 전의 가르침을 포함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들었으므로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다로 불렸다. 아난다는 뛰어난 기억력으로 부처님께서 평생 설하신 법을 다 외우고 있었으며, 부처님 열반 후 500명의 대중스님 앞에서 모든 경전을 낱낱이 외워서 최초의 불교 경전을 성립하고 증명을 받았다.
아난다가 여기서 말하는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말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표현이다. 경전을 보면 아난다는 잘생기고 뛰어난 용모 때문에 부녀자들로부터의 유혹이 많았으며, 수행자로서의 엄격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개성과 매력을 갖춘 스님이었다. 이런 인격적인 존재인 아난다가 스스로 ‘나’라고 했을 때, 그 ‘나’는 과연 어떤 나일까? 그리고 아난다는 왜 흔히 다른 종교나 가르침에서 하듯이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나’는 주관으로서의 ‘나’와 객관으로서의 ‘나’가 있다. 보통사람들은 주관적인 관점으로 타인의 말을 듣지만 경전에서의 아난다는 객관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를 ‘나에게 이렇게 들려왔다.’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치 거울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비추지만 어떤 생각과 의도도 품지 않은 것처럼, 아난다도 있는 그대로의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억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아난다가 외웠다고 한다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경전 속의 미심쩍은 부분이나 오류가 바로 부처님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난다와 500명의 제자들은 그들이 존경하고 따랐던 위대한 스승에게 조금이라도 의혹이나 불신이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최대한 객관을 반영하려고 노력했지만 혹시라도 오류나 착오가 있다면 그것은 아난다 자신의 몫으로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난다의 이런 바람과 노력 덕분이었을까. 2,500여 년의 긴 역사를 지나면서 경전을 해석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때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기도 하였지만, 항상 근본을 소중하게 여기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종교와 철학, 사상은 인간과 세계를 평화롭고 자유롭게 하고자 생겨난 훌륭한 가르침들이다. 이런 가르침들은 세계 도처에서 각기 그 나름의 역할과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측면에서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종교와 사상이 가장 인류와 세계를 분열시키고 위태롭게 하는 존재로 대두되기도 한다.
매일매일 도처에서 일어나는 테러와 전쟁, 폭력의 바탕에는 잘못된 종교적 신념과 사상이 뒷받침 되어 있다. 선지자들의 자비와 평화의 가르침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세계를 분열과 대립, 다툼으로 이끌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종교 내부의 대립과 투쟁이 다른 종교와의 다툼보다 더 심할 때도 있다. 이런 주장의 저변에는 항상 ‘절대자의 뜻과 의지’를 담보로 하고 있다. 참 슬프고 아픈 일이다.
경전을 읽을 때면 너무나도 상투적인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첫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늘 애를 쓰곤 한다. “부디 제가 경전 본래의 가르침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경 서산 부석사 주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