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논술을 시작해야 한대요” 진지한 표정으로 후배가 얘기한다. “초등학생이 무슨 논술을 시작해? 그 나이에는 아이가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역시 교육학을 전공한 후배는 난감한 표정으로 다시 설명한다. “엄마들이 다 그래요. 아이 대학 제대로 보내려면 초등학생 때부터 논술을 잡아야 한다고.”
고액 논술 사교육 부추겨
하기는 후배의 말이 아니더라도 논술학원들에 전례 없이 많은 수강생들이 밀려들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수능 만점자가 응시자의 1% 나 될 것이라는 예고로부터 시작된 학부모들과 사교육의 반응은 빠르고 강하다.
현재 대학입시의 주요 잣대는 내신 수능 논술이다. 그런데 대학입시의 주요 잣대인 중 하나인 수능의 변별력이 사라지면, 자동적으로 대학들은 나머지 잣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내신은 이미 고교간의 현격한 학력차가 존재하는 데도 이를 반영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변별의 잣대로는 치명적인 한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수능이 쉬워져서 변별력을 상실하면, 대학들은 논술에 더욱 치중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논술은 수능 사교육 보다 훨씬 심각한 고액 사교육의 온상이다. 해마다 입시철이면 고액 논술특강 집중단속이 교육청의 큰 과제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제 쉬운 수능 덕분에 고액의 논술 사교육까지 본격적으로 챙겨야 하는 학부모들은 죽을 지경이다. 수능을 쉽게 출제하여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발상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평가의 핵심은 공정성이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쉬운 수능은 진학지도에 어려움을 주고, 재수생을 양산하며, 중고등학교 교육의 내용과 방향에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쉬운 수능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로또 수능’이 대학입시의 과정 자체를 매우 비교육적인 것으로 전락시킨다는 점이다. 로또 수능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평소 실력과는 상관없이 수능 당일에 운 좋게 실수를 하지 않은 학생들이 명문대에 입학하는 역전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교육의 과정은 그 자체가 지극히 교육적이어야 한다. 학생들은 대학입시의 긴 여정을 통하여 “꾸준히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한 사람들은 결국에 정당한 성과를 거둔다”든지, “요행을 바란 벼락치기는 소용이 없다”든지 하는 식의 인생의 황금률을 경험해야 한다. 평가의 생명인 변별력을 상실한 수능 앞에서, 우리는 인생의 황금률은커녕 최소한의 공정성도 찾기 어렵다. 입시 전문가들은 공공연히 “올해의 중위권 학생들은 지금 수학 점수가 낮아도, 얼마든지 명문대를 바라볼 수 있다.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 포기하지 말라” 라고 조언한다. 이와 같이 요행이 통하는 입시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지 답답한 일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난이도가 불안정한 수능이 계속되어 선발의 공정성이 불안하면, 열심히 공부하여 그에 걸맞은 결과를 기대하는 뛰어난 학생들은, 기회만 닿으면 외국대학으로 진학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최근 들어서는 EBS 와 수능의 연계를 강조하면서, EBS 지문을 그대로 출제하지 않고 변형해서 출제했다는 점이 학생들의 공공연한 불만으로 떠오를 수 있는 황당한 교육적 상황마저 나타나고 있다.
쉬운 수능은‘실수 테스트’
세계는 지금 창의성 도전정신 수월성을 교육목표로 내걸고 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뛰어난 학생들을 ‘실수 테스트’수능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와 같이 변별력이 없는 수능이 지속된다면 결국 우리나라에는 열심히 공부하려는 학생들보다는, 실수를 하지 않는 연습을 반복하는 학생들로 꽉 차게 될 것이다.
쉬운 수능,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제는 그 누구도 물수능이니 불수능이니 하면서 수능과 대학입시를 흔들지 말고, 수능이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게 내버려 둘 일이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하여.
김은주 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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