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글을 꼭 읽어야 할 사람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운을 떼어야 할 것 같다. 6월 임시국회가 진행 중인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시 짬을 내어 이 글을 읽으시기 바란다. 현재 행정안전위원회 의원들의 책상에는 전자주민증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다. 작년 9월 제출된 개정안은 시민단체들의 문제 제기와 국가인권위원회 토론,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행정안전부의 수정안으로 변모되었는데, 바로 그 수정안이 6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연 500건 위조 막으려 수천억
최근 이 수정안을 두고 “시민단체들이 수정안 자체에 대해서는 많이 보완된 것을 인정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눈에 뜨인다. 과연 그런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수정안은 주민등록 정보의 전자적 수록 목적을 명시한 선언적 조항을 만들고, 판독기를 통한 전자적 수록 정보의 열람에 본인 동의를 요하도록 하고, 판독 정보의 수집·저장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한 정도일 뿐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는 경우 공공기관 은행 병원 및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곳 등 20만 곳에 전자주민증 판독기가 도입된다고 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업체들이 관리하게 될 판독기의 보안문제는 ‘국제 평가기준에 맞는 보안성’이라는 행정안전부의 말 한마디로 완전히 해명된 것인가. 전자주민증을 가지고 은행이나 병원을 이용하려는 고객들이 자신의 전자주민증을 판독기로 열람하는 것에 ‘부동의’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겠는가. 전자칩 판독기의 기능은 주민등록증의 표면 정보와 IC칩 수록 정보를 비교하여 위조 여부만을 판단하는 것이라 하는데, 1년에 500건 정도 발생하고 대부분 검거되는 위조사고 방지만을 위해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전자주민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설득력이 있는가.
이 모든 의문들에 대한 시민단체 및 법률가들의 문제 제기는 아직도 유효하다. 이런 문제들 하나하나를 면밀히 따져야 할 1차적 책임은 바로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몫이다.
최근에는 “전자주민증과 관련한 특허기술을 국내 기업들이 확보한 상태이므로 IT산업 육성과 해외수출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전자주민증 도입을 미룰 수 없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사실 개정안 제출 이후 ‘전자주민증 관련주’라는 검색어가 인터넷에 회자된 것을 보면, 오히려 최근 등장한 찬성론자들의 논리가 보다 솔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여야 국회의원들과 전자주민증 도입을 추진하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우리나라 주민등록증의 역사와 관련한 사례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제도가 도입된 것은 1962년이지만 주민등록증이 발급된 것은 1968년 5월에 주민등록법이 개정된 이후부터다. 1968년 5월 이전에는 시ㆍ읍ㆍ면에서 관리하는 주민등록표만 있었고 주민등록증은 없었다. 그런데 1965년 12월에도 주민등록증 발급과 관련한 일대 논쟁이 있었다. 당시 “간첩 색출을 위해 전 국민에게 주민등록증 발급이 필요하다“는 내무부의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여당이었던 공화당 당무회의가 ‘국민의 불편과 인권 침해 우려’를 이유로 반려했다는 신문 기사가 있다. 일부 신문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 국민을 대상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하고, 지문을 등록시키는 것은 민주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방자하고 무도한 짓”이라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국민 인권 걸린 문제 인식을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전자주민증의 도입은 주민등록표만 있다가 주민등록증 이 발급될 당시의 변화만큼이나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문제이다. ‘중대한’이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이유는 이번 개정안이 전체 국민의 인권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인권의식이 반세기 전인 1965년 당시 정치인들의 인권의식조차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전자주민증에 대해 보다 솔직하게 말하고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좌세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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