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기지도, 잘 나가는 가수들처럼 예능감이 뛰어나지도 않다. 그래서 김범수(32)는 13년 동안 '노래만 잘하는' 가수였다. '얼굴 없는 가수'로 데뷔해 여지껏 가요 프로그램 1위 한 번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절실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김범수는 최근 MBC '나는 가수다'에서 국내 명곡들을 록, R&B 등으로 소화하면서 대중이 가수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게 하는 아이콘이 됐다.
김범수는 "웃긴 얘기지만, 13년을 노래했는데 요즘에 와서야 노래를 내 것처럼 부르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정규 7집 'SOLISTA'의 파트2 '끝사랑'을 발표한 그를 서울 광화문 근처의 카페에서 만났다.
"요즘 정말 행복한 피로감을 느껴요. 이런 관심과 사랑 처음이에요." 김범수는 바쁜 녹화 일정과 앨범 활동으로 얼굴은 까칠하고 푸석해 보이는데, 목소리는 생기가 넘쳤다.
"1990년대 가요계에 신승훈과 김건모가 양대 산맥이었다면, 저는 건모형을 추앙했어요. 무대에서 자유롭게 끼와 역량을 보여주는 가수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가만히 서서 노래하는 가수로, 다른 길을 걷게 됐어요. '나는 가수다'에서 제가 그 동안 포기해왔던 것들을 한꺼번에 터뜨린거죠." 김범수의 끼는 지난 12일 방송된 남진의 노래 '님과 함께'로 폭발했다. 역동적인 춤과 퍼포먼스로 좌중을 압도하며 '발라드 가수'란 꼬리표를 던져버렸다. "그 무대가 끝난 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가수'는 제 음악 인생의 터닝포인트예요."
하지만 7집 파트2인 '끝사랑'은 발라드 중심의 기존 음악적 색깔이 강하게 묻어 있다. 김범수는 "'나가수' 첫 녹화 전에 이미 앨범 기획이 끝나서 기존 색깔대로 갔다"며 "'나가수' 이후 기획했다면 제가 하고 싶었던 R&B나 소울, 펑키 같은 것들도 넣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나가수'를 통해 그를 좋아하게 된 팬이라면 '나가수 김범수'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는 앨범이 오히려 낯설 수 있다. 그는 "원래 고정팬이 30~50대였는데 '나가수'덕에 10,20대 팬층이 생겼다"면서 "이런 분들께는 이번 앨범이 좀 심심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에 앞서 저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나가수'의 최대 수혜자 김범수는 이 무대에 언제까지 서게 될까. 김범수는 "사실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교체되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조관우의 '늪'을 부른 다음에는 일주일 동안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극도의 긴장감으로 에너지를 너무 과하게 쓰니까. 이 무대를 하면서 조금씩 목소리가 안 좋아지는 걸 느껴요." 초창기 멤버 중 남아있는 박정현, 윤도현도 많이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기존 멤버들이 물러나고 나얼이나 임정희 같은 가수들에게 저희처럼 재조명 받는 기회를 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나가수'를 통해 정말 많은 걸 얻었다고 했다. "윤도현 형이 '가수 개화 프로그램'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사실 10~20년씩 노래 부르면 가수는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나가수'는 그런 모습을 철저하게 깨뜨려서 처음으로 돌아가게 해줘요. 김건모 형은 이비인후과를 10년 만에 처음 갔다고 해요. 술이랑 담배 엄청 했는데, 이제 노래 부르기 위해서 안 한다고. 저는 건모 형이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모습을 보고, 얼마 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죠."
'나가수'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8월 중순 전국투어가 있어요. 예전에는 큰 도시만 갔는데 이제는 중소도시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아졌으니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팬들을 찾아 다니며 평생 공연을 하고 싶네요."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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