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급하게 필요한 것은 감기약이나 해열제 같은 것 아닌가. 박카스 안 먹는다고 피해가 오는 것도 아니고…."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란의 쟁점을 이렇게 정리했었다. 논의의 핵심은 종합감기약, 해열진통제와 같은 가정상비약이지 드링크제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복지부는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대책을 속 시원히 내놓지 않다가 청와대의 질책을 받고 서둘러 대책을 발표하면서, 15일 우선 박카스 등 44개 소화제ㆍ정장제 등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해 슈퍼에서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진 장관의 애초 취지에는 어긋나는 이번 조치 이후 우려했던 대로 '약국 외 판매'논의는 목표점을 잃고 산으로 가고 있다.
무엇보다 박카스 등의 의약외품 분류에 따른 반대급부로 약사회가 일부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요구하면서, 감기약 약국 외 판매 논의는 더욱 뒤로 밀리는 분위기다.
대한약사회는 18일 서울 서초동 약사회관에서 전국 임원과 분회장이 참석하는 긴급 궐기대회를 열고 현재 의사처방이 있어야 판매할 수 있는 사후피임약, 비만치료제 등 전문의약품 1,200개 품목을 의사처방 없이 팔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약사회는 결의문을 통해 "의약품 약국 외 판매는 동네약국의 생존 기반을 빼앗아 폐업을 야기하고 이는 되레 국민 불편과 의약품 오남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박카스를 비롯한 44개 일반약의 의약외품 전환 철회, ▦건강보험 재정악화의 원인인 진찰료 등 의료수가 절반 삭감 ▦처방전 리필제(한번 의사한테서 받은 처방전으로 두 차례 이상 처방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성분명 처방(현행 상품명 처방을 성분 처방으로 바꾸는 것) 실시를 주장했다. 그동안 주장해 온 온갖 요구사항들을 모두 쏟아내고 있다. 그나마 의사협회가 복지부의 약사법 개정 약속에 따라 22일 전국의사대표자결의대회를 연기하면서 세 대결은 피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1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이하 약심) 의약품분류소위원회의 2차 회의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위 위원장으로 선출된 조재국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의약품 분류가 오래돼서 한 번 전반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한국소비자연맹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슈퍼 판매를 원하는 일반의약품 목록을 받아보고 논의하기로 했지만, 약사회는 논의 자체를 거부하기로 했다. 결국 약사회를 달래기 위해 일부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함께 추진한다면 이번에는 의사협회가 반발할 것이 뻔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의약품 일부 주고받기로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약사법의 의약품 분류별 정의에 따라 전문의약품의 일반약 전환, 박카스 등의 의약외품 전환은 모두 법 개정 없이 고시만 바꾸면 되지만, 감기약 등의 약국 외 판매는 법을 바꿔야만 한다. 결국 온갖 곁가지 재분류만 먼저 확정되고, 정작 핵심인 감기약 등의 약국 외 판매는 가장 늦게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국회 통과를 확신할 수 없어 성사 여부도 불투명하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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