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터 세메냐(20ㆍ남아공).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신데렐라다. 당시 그는 여자 800m에서 1분55초45의 기록으로 2위를 2초이상 따돌리는 압도적인 레이스로 금메달을 움켜줬다. 경기는 흡사 남녀대결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싱거웠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로 질주하는 세메냐의 주법이 '완벽하게' 남자다웠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중저음의 굵은 남자 목소리로 우승소감을 밝혀 '정말 남자 아니냐'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곧바로 조사단을 구성, 10개월 가까이 세메냐의 성 정체성 규명에 나섰다. 그리고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의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시켰다. 이에 대해 세메냐는 "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수용했을 뿐이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0년 7월에서야 IAAF는 "세메냐의 대회 출전을 허용한다"며 논란을 종식시켰다. 이후 세메냐는 유럽육상대회 여자 800m에 출전,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녹슬지 않는 기량을 과시했다. 올 들어서도 지난 3월 남아공 육상대회 400m에 출전해 54초03으로 우승한 그는 "대구 세계선수권에서 챔피언 자리를 지켜내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세메냐는 "2연패를 달성하고자 많이 노력했고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육상에서 성 정체성 논란을 부른 것은 세메냐가 처음이 아니다. 1938년 여자 높이뛰기 세계신기록(1m70)을 작성한 도라 라트엔은 히틀러의 나치정부가 아예 성(性)을 바꾼 경우다. 남성이었지만 곱상한 외모덕분에 여성으로 출전했던 것. 하지만 그는 헤르만 라트엔이라는 남성이었음이 뒤늦게 들통나고 말았다. 1964년 도쿄올림픽 여자 400m계주에서 금메달을, 100m에선 동메달을 딴 에바 클로부코프스카(폴란드)는 1967년 염색체 검사를 통해 남자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편 성 정체성 검사는 1966년 유럽육상선수권 때 처음으로 도입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1968년 멕시코올림픽 때 성별검사를 도입했으나 여성단체들의 반발로 1999년 폐지했다. IOC는 그러나 세메냐 논란을 계기로 성 정체성 가이드라인을 새로 만들어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전문가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회색지대'(a gray area)에 있는 제3의 성이 존재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 800m에서 은메달을 딴 산티 순다라얀(인도)이 대표적인 경우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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