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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남북관계에 무심한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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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남북관계에 무심한 인심

입력
2011.06.1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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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던 외국 생활을 이 자리에 옮기는 것이 민망하지만, 그래도 2005년 3월 스페인 여행 당시 우리 가족이 겪은 작은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배낭을 메고 스페인 남부 세비야의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둘째 아들이 "저것 좀 보아요"하고 외쳤다. 찻길 가 입간판에 평양 서커스단의 공연 안내문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안내문에는 줄그네, 피에로 등 서커스 도구와 등장인물의 컬러 사진이 함께 있었는데 그것이 아침부터 낯선 거리를 헤매다 지친 우리에게는 마치 옛 친구처럼 반가웠다.

입간판을 눈으로 본 것만으로는 아쉬워 손으로 직접 만지고 그 옆에서 가족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곳에 머문 시간이 길었더라면 실제 서커스를 보러 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 거리에 북한 사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마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테고 혹시 마음이 통했다면 점심이라고 함께 먹었을지 모른다.

세비야의 평양 서커스 입간판

그렇지만 30년 전이라면 사정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물론 그때라면 우리 가족이 그렇게 배낭여행을 할 수 없었을 테고 북한 서커스단이 세비야에 갔을 리도 없었겠다. 어쨌든 그 때로 시계를 돌려 북한 입간판을 보았다면 반가움보다 긴장감이 앞섰을 것이고, 혹시 북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반갑게 손잡고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 분명하다. 북한에 대한 강고한 생각들이 서서히 바뀌고 이국 거리의 북한 입간판을 보고 반가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우리의 유전자에 통일의 염원이 아직은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국민 사이에 적대감이 크게 준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북한 주민의 삶에 호기심을 품었고 기회가 되면 그들을 만나려 했다. 그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최근 만난 박지원 의원에 따르면 북한은 당시 우리를 잘 사는 남쪽 형제로 여겼다. 전세계의 눈과 귀가 한반도에 쏠렸다는 점만 보더라도 6·15 선언은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날을 되돌아보는 사림이 매우 드물다. 제대로 된 기념식 조차 보기 힘들다. 사람들은 기껏 11년 전 일어난 떠들썩한 이벤트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물론 지금껏 남북 정부가 그 뜻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면 이러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 일어난 것은 남쪽의 정부가 교체된 것인데 그것이 21세기 탈냉전 시대에 이렇게까지 남북관계를 흔들 수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놀라울 뿐이다.

남한은 북한의 핵무기에 미국보다 더 민감하게 대응했고 북한은 결국 남한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다. 상대를 향해서는 한껏 증오를 드러내면서도 미국과 중국에 스스로 휩쓸려 들어가려 했다. 그래서 북한은 남한과 미국에 기대했던 경제성장과 체제보장을 중국에 의탁하려 하고, 남한은 미국에 기대 대북강경 주문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획일적인 북한에 비해 이념적으로 훨씬 자유로운 남한은 내부적으로도 갈등과 대립에 휩쓸려 있다.

미움은 미움을 낳아

원래 미워하다 보면 더 미운 법이다. 미움을 잠시라도 접고 상대를 예쁘게 보아주면 또 그런대로 예뻐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북 당국은 현재 상대를 그렇게 대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남북 비밀접촉 사실이 공개되면서 일은 더 꼬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 태도가 중요한데, 남북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갈수록 줄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해 천안함, 연평도 사건처럼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부글부글 끓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또 다르다. 어찌 보면 일자리, 공부, 건강 같은 일상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남북문제에 대한 관심이 뒤로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미움이 미움을 낳고 대립에 대립이 이어지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전쟁이 일어나 세계를 놀라게 하고 남북정상이 만나 또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이 계절이 이렇게 흘러가는 게 아쉽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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