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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 펴낸 김애란/ "희망과 긍정은 타협 아닌 용기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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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 펴낸 김애란/ "희망과 긍정은 타협 아닌 용기라 생각"

입력
2011.06.1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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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 다이너마이트다. 웃음보를 관통하고 눈물샘을 터뜨리고, 아마 국내 소설 시장까지도 뒤흔들지 모를.

스물 다섯이었던 2005년 <달려라 아비> 로 최연소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각종 문학상을 휩쓴 김애란(31)씨는 일찌감치 '차세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자칫 과도할 수 있는 찬사까지 받아왔다. 그가 등단 10년 만에 내놓은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발행)은 그 기대의 팡파르에 어긋나지 않는다.

"운명적 이야기꾼"(황석영씨)임을 증명하는 듯 인생의 비극과 희극의 오묘한 경계를 쥐락펴락 하는, 능청스럽고 흡입력 강한 이야기가 외려 불길할 정도다. 이 작가가 너무 일찍 세상 이치를 알아챈 것은 아닐까, 혹시 너무 일찍 어른이 된 것은 아닐까.

비참한 상황에서조차 시치미를 뚝 떼는, 쿨한 거리 두기로 자신의 운명을 조롱할 줄 아는 작가가 이 소설에서 택한 설정은 더욱 극단적이다. 죽음이 예고된 '늙은' 아이가 바라보는 부모와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한아름은 희귀 질병인 조로증에 걸려 나이는 열일곱 살이지만 몸의 연령은 팔십세. 키 130cm에 머리는 다 빠지고 각종 합병증에 시달리며 인생이 '철저하게 혼자'라는 것을 깨달은 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웃긴 자식이 되고 싶다"는 게 소원인 씩씩하고 밝은 아이다. 그의 시선에선 무미건조한 일상의 순간들이 두근두근 거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찬란한 생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 조숙한 아이는, 친구 말만 믿고 여러 일에 손댔다 실패하고도 '붕우유신'을 가훈으로 삼는 아빠와 그 가훈을 '붕신'으로 읽는 엄마가 열일곱 철부지 시절 낳은 합작품. 여든의 몸을 가진 아이가 어린 부모의 연애 이야기를 소설로 써 선물하는 내용을 기본 축으로, 죽음을 앞둔 아이가 느끼는 생의 신비와 철부지 부부가 고단한 삶을 견디며 성숙해 가는 과정이 맞물려 진행된다.

시종 웃음을 머금게 하는 유머 속에서도 점차 애틋한 슬픔의 리듬감이 증폭되다 마침내 죽음과 생의 환희가 하나의 음률 속에서 호흡한다. 웃다 울다 하는 희비극의 엇갈림 속에 삶과 죽음, 늙음과 청춘, 기쁨과 슬픔 등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이 번뜩인다. 예컨대 아빠와 아이가 주고 받는 이런 대화처럼. "네가 뭘 해야 좋을 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아빠) "그게 뭔데요?"(아들)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하지만 잘 만든 이야기 속에 혹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함정이 도사린 것은 아닐까, 하는 미심쩍음이 없지 않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정체에서부터. 그래서 조금 짓궂지만, 공격적인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그는 한국문학을 이끌 기대주니까.

-설정 자체가 최루성이 강하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다루는 TV다큐도 떠올랐다. 그 감동이 혹시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에서 오는 안도감은 아닐까. 그런 프로그램의 함정을 이 소설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도 자칫 소재주의로 갈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이 아이의 내면으로 더 잘 들어가려고 애썼다. 자신은 없지만. 아름이가 안됐다는 연민으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면 그냥 소재가 돼 버릴 테니까. 사실은 이 아이가 얼마나 재밌고 씩씩하고 귀하고 매력적인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려고 했다. 아픈 아이라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아름이란 고유명사로서. 약자라는 추상명사로 보여주면 그게 말 그대로 함정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설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메일 친구 서하가 장난을 치긴 하지만, 아름이는 그마저도 포용한다. 모든 것이 착함과 긍정으로 수렴되는데, '순진한' 천사적 시각이 아닐까.

"세상을 마냥 선하게 보는 것은 순진한 시선이고, 작가는 순수할 수 있어도 순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주 매력적인 악인은 안 나오지만, 나름 균형을 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이 모두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속에 다 섞여 있지 않나. 아름이가 좋은 세상을 만나서 마냥 긍정하면 말 그대로 가짜 진실처럼 되겠지만, 얘가 상처 받고 엎어지고 한 뒤의 긍정이기 때문에 게으른 낙관이 아니라 성숙한 긍정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긍정으로 인해, 한편으로 작가가 너무 일찍 세상과 화해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글쎄, 잘 모르겠다. 근데 계간지 보니까 윤성희 선배가 냉소를 잘 하려면 그릇이 커야 된다는 얘기를 했더라. 내가 아마 그릇이 안 되나 보다.(웃음) 예전엔 희망이나 긍정이 약간 투박해 보이고 갸웃거리게 했는데, 요즘은 그게 용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을 갖거나 뭔가 이해하고 화해하려는 태도가, 타협이 아니라 용기일 수 있겠구나 하는."

-이 소설을 이끄는 힘은 유머 같다. 이야기에서 유머의 힘을 어떻게 보나.

"이광호 선생님이 유머는 자기를 타자화시키는 능력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했다. 타자화라는 것은 거리감각인 것 같다. 그 거리감이 그 사람을 건강하게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또 상대나 자신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으면서도 위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같다. 농담이 좋은 것은 가벼워서가 아니라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 균형을 맞춰주기 때문이 아닐까. 부력과 중력 사이의 균형 같은."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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