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교회를 어디로 가야 하나요. 그녀는
물었고, 길이 복잡하니 따라오라고 나는 말했다.
마음에 든다는 듯 그녀는 웃었다. 꽃무늬 재킷 전체가 웃었다.
서른이 안 돼 보이는 여자가 마흔이 넘은 나를
내 생애의 어떤 여자보다도 기쁘게 따라왔다.
벚꽃이 지고 있었다. 언덕 밑 자드락길 파밭 지나
골목에 접어들어서도 나는 몰랐다. 놀랐다.
가나안 교회를 얼마나 가야 하니, 반말로 그녀가 다시
물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별안간
블라우스 앞섶을 홱 열어젖히고 맨가슴을 꺼낸 채로
달려들어서, 내 목을 끌어안고 매달려서가
아니었다. 문득 여자의 등 뒤에서 여자를 꼭 닮은
늙은 얼굴이 나타나 깔깔대는 알몸을 철썩철썩
때려가며 옷을 입히고, 사과도 없이 허둥지둥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아, 나는 정신없는 몸 앞에서
정신없이 옷깃을 여미는 인간이구나. 나도 몸이었구나.
하지만,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니. 어떻게
견디지 않을 수 있었니. 벗은 몸이라도 내밀어야 했던
참혹이 있었던가. 다 벗어던지고라도 따라가야 했던
순간이 누구에게는 없었을 것인가, 살 떨리는 그곳이 비록
독과 피가 흐르는 저주의 땅이라 해도.
● 시 속의 정황은 누가 봐도 자명합니다. 꽃무늬 재킷을 차려입은 한 젊은 여자가 길을 물었고 시인이 상냥하게도 직접 길을 안내하다가 봉변을 당합니다. 별꼴일세. 놀란 표정을 지우고 다시 무심한 얼굴로 돌아와 가던 길을 가거나 저녁 술자리에서 의기양양 떠들기로 맘 먹을 수도 있겠죠. 그러는 대신 시인은 어떤 참혹함과 슬픔을 떠올립니다.
로베르토 볼라뇨는 말합니다. “삶은 알갱이마다 미세하게 풍경을 그려 넣은 쌀알 목걸이와 같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목걸이를 하고 있지만, 목걸이를 벗어 눈에 가까이 대고 알갱이마다 담겨 있는 풍경을 해독할 인내심이나 용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벚꽃 진 골목의 쌀알 속에서 시인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다 정신을 놓쳐버린 이의 참혹을 꿰뚫어 봅니다. 볼라뇨는 덧붙입니다. 쌀알 미니어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살쾡이와 매의 눈이 필요하다고요.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