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도우미, 아기돌보미(베이비시터) 등 가사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가사노동협약'이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ILO 100차 총회에서 채택됐다. 한국 정부는 이 협약 채택에 찬성했지만 이를 제도화할 수 있는 국회비준 추진에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ILO'가사노동협약'이란 전세계에 1억명으로 추산되는 가사도우미, 아이돌보미, 정원사, 요리사 등 가사노동자(domestic worker)들에 대한 ▦급여와 노동조건, 노동시간을 명시한 근로계약서 작성 ▦노조 결성의 자유 보장 ▦산업재해시 보상절차 마련 ▦매주 최소한 하루 이상의 휴일 보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협약은 2008년부터 논의돼 왔다. 국내 노동계에서는 주로 중고령 여성들이 담당하는 가사도우미, 간병인, 요양보호사, 아기돌보미 등을 가사노동자로 보고 있는데 대략 14만명(고용노동부)에서 30만명(노동계)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고용부는 "협약 취지는 찬성하지만 비준까지는 법적으로 검토할 여러 문제가 많다"는 입장이다. 협약을 비준하면 협약 목적에 맞도록 국내법을 바꿔야 하고 협약비준 후의 조치를 매년 ILO에 보고해야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근로기준법 조항이다. 근로기준법상 요양기관에서 일하는 간병인 정도를 제외한 상당수의 가사노동자들은 '가사사용인'으로 규정돼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결성이나 산재보험 가입 등이 불가능한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협약을 비준하려면 근로기준법의 '가사사용인 예외조항'을 고쳐야 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가정 안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고, 직업소개소의 소개를 받는 경우도 있는 등 이들의 근무형태를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며 "이들의 고용관계, 노동시간, 임금 등 실태조사를 한 뒤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다른 고용부 관계자는 "사업장이 아닌 가정에서의 노동에 법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며 "근로기준법 개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가사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방법은 없는지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국회비준 추진이 어렵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우리정부가 비준입장을 밝혀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가사노동자들을 위한 돌봄연대는 "뒤늦게나마 협약에 찬성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가사노동자들에 대한 실질적 권리보장보다는 국제사회의 의제에 동의한다는 생색내기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며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이들의 현실을 반영해 정부가 조속히 비준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1년 ILO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ILO의 비준대상 협약 76개 중 24개를 비준했다. 가입연도가 늦은 것을 감안해도 ILO회원국 평균 비준건수(약40개)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노동기본권에 관한 핵심협약으로 ILO가 수 차례 비준을 촉구한 8개 협약 중에서는 4개만 비준한 상태다.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제98호), 강제근로에 관한 협약(제28호), 강제근로의 폐지에 관한 협약(제105호) 등인데, 정부는 공무원과 교사의 노동3권을 선택적으로 보호하는 노조법과 교원노조법, 노조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형법 등 국내법에 저촉된다며 이들 협약의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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