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정민우 지음/이매진 발행·384쪽·1만7,000원
'잠만 자는 방. 보증금 100만원에 관리금 15만원. 편의 시설 완비. 조용하고 깨끗함'
'1인1실 침대방. 남녀 층별 분리. 21_25만까지 다양한 가격'
전세는 비싸고 월세는 아깝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5㎡ 남짓한 '자기만의 방'을 찾아 스며든다. 20만원 안팎으로 한 달을 머물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밥 라면 김치까지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곳, 고시원으로.
사회학자인 정민우씨가 쓴 <자기만의 방> 은 고시원에서 사는 22명의 눈으로 청년세대의 주거문제를 짚는다. 스물 다섯에서 서른 넷 사이인 이들은 어려서는 외환위기, 커서는 금융위기를 겪었다. 몇 해 전엔 '88만원 세대'라 불렸고, 지금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고 해 '3포 세대'라고 불린다. 저자는 이들을 '방살이 청춘'이라고 부른다. 청년실업과 주거대란에 치여 집을 구할 능력은 없고 그저 몸 뉘일 방을 찾아 이곳 저곳 헤맨다는 뜻이다. '집을 갖고 태어나는 달팽이마저 부럽다'는 목소리가 애잔하게 들린다. 자기만의>
방살이 청춘들은 저자와의 만남에서 고시원을 이렇게 정의한다. '떠나기 위해 들어가는 곳'이라고. 어떤 이는 가진 돈이 부족해서, 다른 이는 전세 비용을 마련하거나 취업 준비를 하려고 고시원을 찾는다. 신분상승을 꿈꾸는 진짜 고시생도 산다. 발을 들인 이유야 제각각이지만 고시원이 '간이역'이란 데는 이견이 없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어쩔 수 없이 밟아야 하는 진흙탕 속 디딤대. 그래서 젊은이들은 정작 자신이 살면서도 고시원을 집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런 역설을 매일 마주하는 이들이 전국적으로 10만명을 훌쩍 넘는다. 2009년 1월 기준 전국에 분포한 고시원은 6,126개. 이중 61%가 서울에 몰려있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 서울의 고시원 수는 2001년 811개에서 2009년 3,738개로 10년 동안 5배 가량 늘었다. 이는 수도권에 저렴한 주택이 부족한데도 젊은이들이 더 나은 기회를 좇아 이동했고, 극심한 청년실업난으로 불안정한 청년기가 길어지면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불안정한 청년기를 졸업해도 주거 불안은 계속된다. 당신이 좋은 직장에 취직해 연봉 3,830만원을 받는다고 치자. 한 푼도 쓰지 않고 전부 투자해도 이 연봉으로 서울에서 중간 정도 집값(4억4,646만원)의 주택을 장만하려면 11년 하고도 7개월이 걸린다. 젊은이에게 집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저자는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더 많은 집을 상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의 방식을 버리고,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 따위의 통념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 그는 확실한 대안을 내놓진 않는다. 대신 단칸방에서 함께 살게 된 룸메이트와 경제적ㆍ정서적 공동체,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가는 방살이 청춘의 모습에서 새로운 집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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